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금융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라는 새로운 꽃을 피웠다. 환전과 예금·어음 업무에서 출발한 금융업이 20세기 들어 미국의 유전개발 붐과 맞물리면서다. 지금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가스, 석유 같은 에너지개발과 도로·항만·발전소 같은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많이 활용한다.
투입 돈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은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며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사업성 평가, 행정관청의 인허가, 절세 전략 등 모든 것을 점검해 안전한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이 판에 낄 수만 있다면, 이익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10여년에 걸쳐 만든 고속도로는 30년, 50년 또는 그 이상, 통행료를 받으며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안겨준다. 그렇게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금융의 꽃이 된다.
◆ 경제 성장의 지렛대, 금융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렇다. 이 위험은 여전히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덮쳤다. 위기 극복의 해법은 점점 고차함수가 되고 있다.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아직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사례를 보면, 유독 부동산개발과 연관이 높다. 자본주의 역사, 즉 금융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서다. 일본 식민지배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는 베트남 전쟁 참여와 독일·일본의 차관으로 사회기반시설 구축에 나섰다. 은행은 있었으나 전형적인 관치금융에 불과했다.
관치는 부정적인 의미다. 그러나 당시 여건에선 효율이 매우 높았다. 사회기반시설을 빠르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정부의 보증(행정권)을 통해 투자금을 투입하는 관치금융은, 그렇게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지렛대로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1991년 금리자유화와 1998년 외환 자유화를 거치면서 본래의 금융업을 갖춰 나갔다. 모든 것이 늘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체력을 비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에 의해 국제금융질서에 편입되는 아픔을 겪었다.
◆ 부동산 거품의 원인 또는 부산물, PF
IMF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러나 부동산(아파트)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위기에 따른 자산 가격 폭락은, 살아남은 자들에겐 충분히 싼 투자 먹잇감이다. 어렵게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최소한 가족의 잠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원초적인 사실을 학습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재명·윤석열)의 연루 의혹으로 온 나라를 뒤흔드는 '대장동 게이트'도 미니 신도시급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검찰도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해 핵심 중 한 명으로 추정하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구속했다.
이 게이트의 또 다른 핵심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48·천화동인 4호)가 이런 부동산개발에 손을 댄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여야를 바꿔가며 진행된 대장동 부동산개발 과정에서 남 변호사는 처음엔 실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장동 민영개발 방침으로 저축은행에서 수백억원을 끌어다 프로젝트(토지 매입)를 진행했으나,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재명 당시 시장이 공영개발로 방침을 바꾸면서 상황이 꼬였다.
대장동은 재개발을 이유로 주변의 집값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1조5000억원짜리 프로젝트로 컸다. 거액의 투자금을 투입해 땅을 사들이고 개발하게 하는 힘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나온다. 대장동 게이트 관련 기사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설계(Structure)'라는 단어는, PF가 금융의 꽃인 이유를 잘 설명한다.
◆ 불로(不勞) 외치며 인허가권으로 돈 만들다 탈 났나
집권 더불어민주당과 유력 대선 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부동산 관점은 선명하다. 그들에 의하면 땅과 집은 공공재다. 자산가치 상승에 따른 소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불로소득이다. 이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도 차이를 보인다. 땅덩어리 자체가 크면 논쟁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역시 성남시와 경기도의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공영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 지사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부패 지옥 청렴 천국, 돈이 마귀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시민 몫을 포기할 수 없어 마귀의 기술과 돈을 빌리고, 마귀와 몫을 나눠야 하는 민관 공동개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 오를지 몰랐다고 주장하면서, 민관 공동개발의 불가피성을 해명하는 듯하다. 이 지사의 이 주장이 '자기 고백'인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보도 내용으로 보면, 이는 아마도 남욱 변호사를 비롯한 세력이 2000년대 후반부터 매입해 놓은 토지를 내놓지 않고 버틴 상황으로 추정한다.
전면적인 공영개발이 벽에 부딪힌 상황을 말한다. 대장동 원주민들은 땅을 헐값(수용)에 넘길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온갖 법 규정을 들이대며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 개발을 지연시키니, 당장 재정을 만들어야 하는 이 지사 측으로선 시간과 싸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이 지사가 대장동을 개발해 환수했다는 5000억원은 기존 원주민들의 땅을 팔아 생긴 돈이다. 인허가권을 행사한 결과다.
이 지사가 이 시기에 돈(재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더 많은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일정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토지를 헐값에 수용당하는 원주민보다, 본인의 선거 일정에 맞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지사는 그렇게 악마와 손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참여 금융회사들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 지사는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악마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것이 정당한 인허가권의 행사인지는 앞으로 따져볼 일이다. 탈(頉)은 항상 그런 곳에서 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순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