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中의 CPTPP 가입신청, 표류하는 한국의 통상정책

2021-09-27 06:00
  • 글자크기 설정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중국 상무부는 9월 16일 성명을 통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공식 신청했다고 밝혔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중국의 전략처럼 보이기도 하는 발표다. CPTPP의 전신은 미국이 주도해 환태평양 12개 국가가 참여, 2015년 10월 타결되어 각국의 비준절차가 진행 중이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그런데 미국인의 일자리를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TPP 같은 다자무역주의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판하며 2017년 1월 TPP 탈퇴를 결정한 후 TPP는 표류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주도로 일본·호주·캐나다·뉴질랜드·칠레 등 나머지 11개 국가들이 다시 추진해 2017년 베트남 다낭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명칭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꾸었다. 2018년 10월 31일 각국이 비준 절차를 완료하면서 2018년 12월 30일 정식 발효됐다.
인구 5억명 이상,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9%, 교역량의 14.9%에 해당하는 환태평양지역의 자유무역 경제권이 출범한 것이다. 일본은 총 무역품목의 95%, 나머지 10개국은 99% 이상 관세가 철폐됐다. 이 경제협력체는 미국과는 경제·안보 면에서 언제나 별다른 마찰 없이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던 일본이 주도해서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쌍무 협정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 장기화에 맞서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는 환태평양지역의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미·일 간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실리적 노선을 취했던 당시 아베 정부의 정책노선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 주도의 CPTPP는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대항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중국 주도의 RCEP에만 가입해 있다.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일본은 ASEAN+3(한·중·일)이라는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 차원에서 가입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RCEP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어 일본으로서는 일본 주도의 새로운 환태평양지역 자유무역지대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아베 정부의 실리적 정책노선은 무역만이 아니었다. 2018년 10월 아베 총리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고 '경쟁에서 협조로'라는 슬로건 하에 ‘일·중 신시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일본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당시는 미국 금리인상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3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외채가 2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안심할 수 없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달러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먼저 리커창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리커창 방일의 답방 형식으로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고 ‘일·중 신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200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이후 냉랭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당분간 센카쿠열도 분쟁을 중단한 일본과 중국은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것이다. 대립할 때는 대립하더라도 실리를 취하는 일본과 중국의 외교정책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역사문제로 최악의 상태로 냉각된 한·일 관계로 인해 일본 주도의 CPTPP에도 가입하지 않고 한·일 통화스와프도 언급하기 힘든 실정에까지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북·중문제로 흔들리며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달에만 해도 미국은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미국·인도·일본·호주, 쿼드 4개국 정상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대면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에 대항해 우주방어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은 쿼드 플러스라고 해서 한국 가입을 사실상 요청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으나 한국은 북·중을 의식해 주저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며칠 전에는 오커스(AUKUS)라는 대중국 핵추진잠수함 동맹체제를 발족했다. 군사정보동맹인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파이브아이즈는 최근 미 의회의 국방수권법안 초안에서 한국 가입을 논의하기까지 했으나 한국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방한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파이브아이즈를 냉전시대의 산물로 비판하면서 사실상 한국 가입을 경고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러한 시점에 느닷없이 중국이 CPTPP 가입을 신청하고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쿼드, 파이브아이즈, 오커스 등 전방위적인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에 중국이 경제동맹 강화로 대응하는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CPTPP 가입은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해 사실상 미국과 가까운 캐나다·멕시코 등이 미국의 의중에 반해 찬성할 것인가는 확언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가입신청을 낸 것이다. RCEP 회원국이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등 동아시아 13개국과 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해 15개국이어서 중국이 CPTPP에 가입하게 되면 캐나다·멕시코·페루·칠레 4개국과만 추가로 자유무역협정을 가지게 되어 중국으로서는 매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들 4개국은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나머지 싱가포르·브루나이·말레이시아·베트남·일본·호주·뉴질랜드 7개국은 CPTPP와 RCEP에 공동으로 가입되어 있다. 일본은 앞서 살펴본 봐와 같이 '일·중 신시대'에 부응해서 중국 가입에 대해 다소 유연한 자세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CPTPP는 어디까지나 일본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어 일본이 긍정적으로 나올 경우에는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고려한 회원국의 찬성으로 중국의 가입도 완전히 배제할 정도는 아닐 수도 있을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은 미국의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어도 아직 CPTPP 가입을 신청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이 더욱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가임을 널리 인식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쿼드, 파이브아이즈, 오커스 등 군사적으로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제동맹 차원의 반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의 군사동맹에 균열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과거 미국 주도로 이뤄졌던 TPP를 자국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판단하고 그동안 TPP를 계승한 일본 주도의 CPTPP와도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동맹과의 공조를 강화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CPTPP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중국은 기존 입장을 뒤집어 미국보다 먼저 CPTPP 가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리고 미국이 오커스를 발족하겠다는 발표를 한 지 하루 뒤에 전격적으로 CPTPP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는 이번 가입이 오커스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전면 부인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1년 전부터 가입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대외 개방을 확대하고 지역 경제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영국의 CPTPP 가입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서둘러 가입 신청서를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도 지난 6월부터 가입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 소재 중국·미국연구소의 소라브 굽타 선임연구원은 "영국이 먼저 가입해 거부권을 갖게 되면 위협이 된다"면서 "중국은 장벽이 높아지기 전에 들어가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중국이라는 큰 시장의 매력에 회원국이 기울어져 중국 가입 가능성이 커지면 미국의 가입도 미국으로서는 딜레마가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이를 위해 부과하고 있는 관세를 CPTPP 가입으로 철폐하는 데 어려움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고립이 심화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트럼프시대와 같이 미국식 통상정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CPTPP 가입도 중요 통상현안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당면한 대외경제정책 과제는 흔들리고 있는 중국경제와 중국의 과도한 경제·통상·안보면의 대한국 압박을 고려할 때 과도한 대중 의존도를 축소하면서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중국 중심의 RCEP에만 가입해 있는 통상정책의 교정이 필요한 실정이다. 미국·일본이 가입하지 않고 있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은 가입해 있기도 하다. 지금은 반도체동맹 등 한·미 경제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때다. RCEP 가입국이 아닌 CPTPP 가입국인 캐나다·멕시코·페루·칠레와 한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 중이다. 따라서 한국은 CPTPP에 가입해도 이익보다 한국의 시장이 잠식될 수도 있는 불이익이 클 가능성은 작다.

한국도 CPTPP에 가입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통상정책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실리적인 방향으로 통상정책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신청을 하면 가입은 가능할 것인가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 완전 경색된 한·일관계다. 과연 이런 한·일관계에서 한국이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CPTPP 가입 신청을 하면 일본이 받아줄 것인가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유 등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의 통상정책은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 중 하나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실리적인 통상외교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