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주가가 기로에 섰다. 다가오는 두 번의 큰 이벤트를 통해 반등을 시작할 수도, 하락세를 키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최근 그간의 방식과 과정을 냉정하게 재점검하겠다고 밝힌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은 엔씨소프트가 얼마나 파격적으로 변화할지에 쏠리는 중이다.
◆ 몰락한 황제주…고점 대비 시총 10조 증발
24일 주가가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지난 2월 기록했던 고점 대비로는 처참한 수준이다. 앞서 지난 2월 8일 엔씨소프트 종가는 103만8000원을 기록하면서 시가총액 22조7882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24일 시가총액이 13조845억원임을 감안하면 약 7개월 새 시가총액이 9조7037억원 증발한 셈이다.
◆ 잇따르는 실책이 주가 급락 불러
주가 하락은 엔씨소프트가 지속적으로 실책을 기록하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올해 초 있었던 리니지M의 '문양 시스템 롤백(원상복귀)' 사건이다. 지난 2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의 게임 시스템 일부를 롤백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이용자가 지불한 요금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항의한 사건이다. 양측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용자들은 엔씨소프트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고 리니지2M과 함께 엔씨소프트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던 리니지M의 이용자 수가 감소하는 계기가 됐다.
주력 게임의 이용자가 줄었지만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8월까지 80만원 언저리를 유지했다. 엔씨소프트가 8월 출시할 예정이었던 신작 '블레이드&소울2'가 일평균 매출로 최대 7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신작 모멘텀'이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레이드&소울2도 엔씨소프트의 실책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다. 과금구조(BM)가 기존 리니지M이나 리니지2M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이용자들은 블레이드&소울2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일평균 매출은 10억원 초중반대에 그치는 중이다. 기대를 모았던 신작이 출시 첫날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난 8월 26일 엔씨소프트 주가는 15.29%(12만8000원) 급락한 70만9000원으로 떨어졌다.
◆ 위기감 커지는 엔씨소프트…'바뀌겠다' 강조
엔씨소프트도 현재 주가에 위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블레이드&소울2 발표 후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엔씨소프트는 지난 7일 자사주 30만주를 취득하겠다는 공시를 발표했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자사주 매입 공시를 통해 주가 하락을 저지하겠다는 엔씨소프트의 의지가 엿보인다.
김택진 대표도 최근 엔씨소프트의 현재 상황을 '위기'라고 평가하며 바뀌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 대표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7일 사내 메일을 통해 "NC가 직면한 현재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변화를 촉진해 진화한 모습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방식과 과정에 의문을 품고 냉정하게 재점검하겠다"며 "NC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대안을 강구해 고객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 리니지W 2차 쇼케이스·도쿄 게임쇼로 반등 가능할까
엔씨소프트 주가의 향방은 이번 주에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연내 출시가 예정된 리니지W를 공개하는 행사가 두 번이나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오는 30일에는 리니지W의 2차 온라인 쇼케이스가 열린다. 이용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할 예정인 만큼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엔씨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인식 수준과 개선 방안에 대한 발언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내달 3일에는 도쿄게임쇼에서 리니지W를 공개한다. 리니지W가 한국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홍보를 하기 위한 자리다.
양일에 걸쳐서 모습을 드러내는 리니지W가 김택진 대표의 다짐처럼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를 계기로 주가가 반등세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이번 주 잇달아 진행되는 행사에서도 리니지W에서 엔씨소프트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경우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 이제는 '없어도 되는' 엔씨소프트…사실상 마지막 기회
증권사들은 이번 쇼케이스와 게임쇼가 엔씨소프트에 있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과거에는 게임적으로도, 투자적으로도 엔씨소프트가 국내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측면에서 대체재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게임적으로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이 대체재로 급부상한 상황이다. 오딘은 지난 6월 출시와 동시에 구글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오른 후 두 달 넘게 왕좌를 유지하는 중이다. 오딘의 게임 이용 방식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리니지2M과 비슷한 만큼 업계에서는 다수의 리니지 이용자가 오딘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 이용자 입장에서는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아니더라도 기존과 유사한 게임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만큼 리니지 시리즈가 더는 유일무이한 선택지가 아니게 된 셈이다.
투자 측면에서도 엔씨소프트의 위상이 낮아진 상황이다. 먼저 카카오게임즈가 오딘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게임주 투자자의 선택지가 하나 늘었다. 현재로서는 엔씨소프트에 비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의 수가 적지만 '에버소울'과 '디스테라', '가디스 오더',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등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준비 중이어서 신작 모멘텀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상장한 크래프톤도 게임주 투자의 대체재 중 하나다. 글로벌 히트작 '배틀그라운드'를 바탕으로 연내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를 출시할 예정이고 '칼리스토 프로토콜'과 '카우보이', '타이탄' 등 차기 기대작도 다수 출시할 예정이다.
이종원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주가의 향배는 4분기 출시예정인 리니지W가 수익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그래픽과 독자적 세계관, 기존 리니지와 다른 플레이스타일이 요구된다. 완벽한 후속작이 나와야만 유저와 투자자의 관심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