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아파트를 구매하기로 한 마웨이(馬煒)씨는 7월 초부터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공상·중국·교통은행에서 차례로 거절 당한 뒤 민영 은행인 자오상은행에서 겨우 대출 문턱을 넘었다.
실제로 산둥성 칭다오의 헤이위(黑煜)씨는 8월 구매한 아파트의 명의 이전까지 마쳤지만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떼이고 소송까지 당할 처지다.
신용대출을 받아 계약금을 냈는데, 은행이 이를 투기 행위로 판단하는 바람에 대출 심사에서 탈락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시행 중인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헝다그룹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까지 고조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실수요자는 돈을 못 구해 아우성인데, 은행권은 당국 눈치를 보며 돈줄을 죄는 복지부동 행태를 보인다.
업황 악화가 장기간 이어질 조짐이라 중소 부동산 개발업체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개업계 종사자 등 시장 참여자 전체가 나락으로 내몰릴 수 있다.
◆당국, 공문도 없이 대출 중단 통보
마씨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반기 들어 가뜩이나 은행들이 부동산 대출에 소극적이었는데 헝다 사태까지 터지면서 돈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일주일만 늦게 신청했어도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고 전했다.
헝다의 은행권 차입금은 6000억 위안(약 109조원) 규모로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손실 처리가 불가피하다. 헝다 디폴트 위기가 일단락되기 전까지는 신규 대출을 줄이고 대손율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금융당국도 대출 축소 및 금지를 압박하고 있다.
차오양구의 한 공상은행 지점에 대출 가능 여부를 문의하니 "한도가 없어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며 "내년에 새 한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국유 은행의 경우 매년 초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로부터 부동산 대출 한도를 받는다.
한도가 점차 소진되면서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대출난이 가중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한도가 남은 은행도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출 잔액 상한선을 설정하고 감독에 나선 탓이다.
대형 은행에서 퇴짜를 맞은 고객들이 별도의 부동산 대출 한도가 없는 중소 은행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당국은 별도 공문 없이 구두로 대출을 막는 창구 지도에 나섰다.
한 한국계 은행 임원은 "당국의 지시를 받고 부동산 대출 업무를 중단한 상태"라며 "이미 승인된 대출만 집행되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보유 자금이 많지 않은 부동산 실구매자들이 계약금을 마련하는 주요 통로였던 신용대출도 막혔다.
당국이 알리바바 등 정보기술(IT) 공룡들의 소액대출 사업에 철퇴를 가한 여파다.
차오양구 왕징(望京)에서 12년째 부동산 중개사로 일해 온 바이칭하이(白淸海)씨는 "규제 수위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보통 부동산 거래액의 20% 정도가 계약금인데, 이 정도 자금을 보유하지 못한 고객은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계 250만명 '생계 위기'
부동산 경기 악화로 중개업계 종사자들도 직격탄을 맞을 위기다.
시장조사기관 베이커(貝殼)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전역의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근무 중인 인력은 25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자격증 없이 일하는 저학력자가 많아 인력 변동폭이 크다. 전체의 61%가 30세 이하이며, 34세 이하로 범위를 넓히면 83%에 달한다. 전문대 미만 학력자는 38%로 조사됐다.
중국 4대 부동산 중개업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마이톈(麥田)의 경우 월평균 급여가 5656위안인데 전체 직원의 25%는 3000위안 이하를 받는다.
기자와 만난 왕징의 한 마이톈 직원은 "기본급은 1000~1500위안 정도이며 주거비나 식비 지원도 없다"며 "입사 후 1~2년 내에 그만두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매매가 급감하면서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 동료들이 많다"며 "한 건물에 3~4개 업체가 몰려 경쟁을 펼치다 보니 고객 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관련 산업 전반이 침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경색이 장기화할 경우 헝다와 연관된 중소 부동산 개발업체는 물론 철강·시멘트·건자재 등 업계로 후폭풍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관영 경제일보는 "당국의 방침이 변하지 않는 한 부동산 시장은 고난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돈주머니가 꽉 막힌 상황도 수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