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미중 사이 눈치보기 전략, 이젠 안 통한다

2021-09-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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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가깝거나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중국에 대한 경계감 확대 양상 뚜렷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미·중 갈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양국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국가들의 처지가 난처해지고 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한 처세로 인해 국익에 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에는 미국의 힘이 과거와 같이 전방위적이지 않다는 점과 중국의 글로벌 경제 영향력이 커진 점이 원인이다. 현재 이익과 미래 이익의 교차점에서 약삭빠른 저울질로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현상이 자주 목격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과 중국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구사하면서 자기 편에 서지 않는 국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이러한 위협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갈라져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촌 대부분 국가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개의 축에서 이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유럽은 EU라는 연합 국가로의 결성을 통해 공동 대응해 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맞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최근 균열이 생겼다. 연합체 내에서의 불협화음을 이유로 영국이 탈퇴함으로써 결속력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은 미국이나 중국, 아시아 등의 문제에 독자적인 행보를 하면서 전통적 파트너인 미국에 더 밀착한다. EU는 중국이 공공의 적이라는 미국의 노선에 기본적으로 동조를 하면서도 개별 국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간섭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일본과 호주다. 공통적인 특징은 중국에 대해서는 경제, 미국에 대해서는 안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일본과 우리가 다른 점은 일본은 꾸준히 수출과 해와 투자 차원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력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일관되게 엇비슷한 규모로 유지한다.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에 적극 동조, 중국 공장의 동남아 혹은 인도나 자국으로의 이전에 적극적이다. 반도체는 독자 생존을 포기하고 미국·대만과의 동맹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중국이 일본에 대해 섣불리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 들지 못한다. 중국의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수입의 80% 이상이 첨단 부품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전체 수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높은 32%에 달한다. 철광석, 석탄 등과 같은 광산물이 주요 수출품이다. 최근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중국 이외의 시장으로 수출선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호주가 미국에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자 중국 정부의 호주 길들이기가 시작되면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양국 교류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인적·문화 등으로 넓혀졌다. 중국 이민은 물론이고 호주 거주 유학생의 30%가 중국 청년들이다. 높아진 중국 의존도는 중국 정부의 호주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으로 이어졌다. 호주에겐 기회이면서 그에 따른 위협도 증가했다. 기회를 포기하더라도 위협을 줄이기 위한 탈(脫)중국으로의 노선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지리적 혹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가까운 나라일수록 탈(脫)중국 가속도 붙여

동남아 국가들의 중국과 관계도 그리 평탄치 않다. 친미(親美)·친중(親中) 정부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민의 반(反)중국 여론 기류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이 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지배력이 원주민보다 오히려 화교 집단에 급격하게 기울어져 있는 데에 더해 중국 자본의 급격한 침투로 경제가 유린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또한 남중국해 한복판에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 이해 당사국인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반발이 거세다.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 등의 공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결성하긴 했으나 결속력가 크지 않은 것이 약점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진 않겠지만 중국에 대한 반감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인도와 중국은 태생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다. 덩치가 큰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 바람 잘 날이 없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인도가 당면한 딜레마다. 서방의 인도에 대한 무관심이 중국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모디 정부가 출범하면서 친(親)서방 정책으로 노선을 변경, 중국을 적대시하고 미국 편에 서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데 혈안이다. 서방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에 이은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인도와 국경을 마주한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 수립으로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가 이해 관계에 따라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처세술이 다양하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 뚜렷하다. 단기적인 이익과 중장기적 이익을 놓고 일시적인 혼선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중국에 대해 호혜적이기보다 위협적으로 보는 시각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편에 서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지만, 미·중 편 가르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글로벌 질서에서 자국의 궁극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현저하다. 다른 이해 당사국보다 한국의 대응이 현재로선 가장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유효했던 전략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실로 난센스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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