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적' 박정민 "고등학생 역, 고민 컸지만…감독에게 반해 시작"

202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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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적'에서 준경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박정민이 고등학생 역할을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연기 데뷔 10년째인 데다가 벌써 30대 중반을 보고 있는 나이이니 자칫 우스워질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이 같은 의심과 우려 속 영화 '기적'이 개봉 했다. 놀랍게도 '무리수' '몰입 방해'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영화 '기적' 속 박정민이 여전히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파수꾼'을 시작으로 '들개' '순정'을 지나 '동주' '변산' '기적'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변하는 청춘을 연기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꿈꾸는 청춘을 그려냈다. 섬세한 감정 연기로 천재 소년 준경의 꿈과 성장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전달한 박정민은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끌어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박정민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기적'에서 준경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등학생 역할을 부담스러워했다고 들었다. 출연을 고사했다가 다시 마음을 돌린 이유는?
- 고등학생 역할을 연기하는 게 부담스럽다기보다 보는 분들이 부담스러울까 봐 걱정이었다. 시나리오를 정말 재밌게 읽었던 터라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이장훈 감독님과 만나게 됐고 그분에게 반해버렸다. '이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박정민의 마음에 닿았을까
- 양원역을 만든 뒤 반쪽짜리 꿈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는 준경의 마음이 이해되더라. 사면초가의 상황 속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라고 할까? 그가 느끼는 좌절이나 괴로움이 마음 아프게 느껴지더라.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장르나 개성이 강한 작품을 주로 해왔는데. '기적'은 오랜만에 일상적인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다
- 연기로 뭔가 확장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한 건 아니었다. 다만 감독님께서 아주 일상적이고 섬세한 연기를 해주시를 바라셨다. '그동안 극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하셨다. 촬영 중간에도 제가 고민에 빠져있으면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라고도 해주셨고. 이런 점들이 저를 끌리게 만든 거 같다. 연기로 굉장히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가 컸는데 이장훈 감독님을 만난 뒤 '감독님을 믿고 따르자'고 생각하게 됐다.

준경을 연기하면서 어떤 점들을 준비했나
- 여러 가지를 준비 해야 했다. 봉화 사투리도 연습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촬영할 수 있을까도 고민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사투리는 완벽히 구사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점이 많다. 사투리의 늪에 빠져버려 연기를 잘 못 한 거 같다.

영화 '기적'에서 준경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시적으로는 양원역을 짓는 게 꿈인 준경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준경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지우고 성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준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데 연기적으로 어떻게 접근했나
- 영화 소개하는 자리에 가면 '간이역을 짓는 것이 꿈인 소년의 이야기'라고 줄거리를 소개하는데 그건 1차원적인 이야기고 그 안에는 꿈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소년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기로 어떻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나 계산은 없었다. (영화 말미 반전이 있어서) 정서나 감정을 어느 정도로 절제해야 하나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계산이 쉽지 않더라. 감정이 크게 다가와서 그때그때 충실하게 연기했다.

극 중 준경과 아버지의 관계가 인상 깊었다. 무뚝뚝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다 보니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빚어지곤 했는데. 실제 박정민과 아버지의 사이도 궁금하다
- 아버지와 저는 친한 부자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제가 너무 닮았다고(웃음). 얼굴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다 똑같다. 우린 무뚝뚝하고 대화가 별로 없는 데다가 뭐 하나 꽂히면 그거에 열광한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사랑하는 편이다. 아버지께 잘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흔한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역할인 이성민과 호흡은 어땠나
- 정말 좋았다. 연기하면서 (이)성민 선배에 관한 궁금증이 계속 생겼다. 작품에 관한 해석이나 뿜어내는 에너지 그리고 깊이감 등을 보며 계속해서 놀랐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성민의) 연기를 보며 그냥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내가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매 순간 놀라곤 했다.

누나 보경과의 관계도 감정을 끌어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수경과 어떤 상의를 했나?
- 보경의 존재나 상황을 정해 놓고 연기하지 않았다. 계산해보려고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들킬 거 같더라. 보경의 존재나 설정에 관해 여러 질문을 하고 고민을 거쳤으나 '사랑과 영혼' 같은 느낌으로 가지 말자고 합의했다. 복선 같은 걸 깔지 말고 너무 드러내지도 말자고 했다.

영화 '기적'에서 준경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준경을 성장시키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라희다. 라희와의 화학 작용(케미스트리)도 매력적이었다
- 라희와 만나는 장면들이 예쁘게 잘 나온 거 같아 기분이 좋다. 처음에는 '윤아의 연기를 내가 잘 받아주고 있는 걸까?' 의심도 됐다. 준경이 워낙 무뚝뚝한 캐릭터라서 라희가 반짝반짝하는데 (준경이) 너무 반응하지 않는 거 같기도 하고….

어느 때부터 호흡이 맞는 것 같았나
- 회차가 거듭되고 (윤아와) 가까워지면서 좋아졌다. 정말 재밌게 촬영한 거 같다. 윤아에게는 '이 친구 앞에서 연기를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나 걱정이 없었다. 상대 배우에게 그런 마음을 느낄 수도 있는데. 정말 편안하게 연기했고 자연스레 카메라에 담긴 거 같다.

이장훈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기적' 모두 예쁘고 착한 정서나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관객들의 마음을 몰랑하게 만드는 거 같다. 배우들도 이런 '기적'의 감성을 사랑하는 거 같더라
- 이 감독님의 전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워낙 유명한 일본 영화 원작이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관람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정말 재밌더라. 원작이 있어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 이 감독님의 작품 세계나 색채에 관해 알고 있었고 기대가 컸다. 배경이나 소품 등에 관해서도 많이 신경 쓰고 계시더라. 기자들이 이 감독에 관해 이와이 슌지('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 등 연출) 감독 같다고들 하시는데 저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어릴 때 좋아하던 일본 영화 감성을 가지고 계셔서 촬영 때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장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런 예쁘고 착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 보기 좋은 영화 같다. 그런 영화기를 바라고.

영화 '기적'에서 준경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동주'부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기적'까지 정말 쉼 없이 일했다. 휴식 없이 작품에 임하고 있는데
- 일하는 게 재밌다. 솔직히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일하는 게 힘들지 않고 재밌기도 하고…. 마침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이제훈·최희서 등 동료 배우들과 단편 영화 프로젝트 '언프레임드'를 진행 중인데
- 촬영은 이미 끝났다. '언프레임드' 중 '반장선거'를 찍었다. 처음 계획은 '잘 만들어보자'였는데 지금은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한다(웃음). 우리 영화는 어린이 배우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로 생각했고 기존 영화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좋은 경험이었고 재밌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보니 감독님들이 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이해가 되더라(웃음).

영화적 접근에 있어서 배우일 때와 감독일 때가 다른 모양이다
- 정말 다르다. 너무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감독님이 대단하고 큰일을 하는 거 같다. 배우 입장으로 (작품을) 모니터할 때 여러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들은 다 계획이 있다. 이번 기회로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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