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과연 어떤 현상이 블랙스완에 해당하며 시 주석이 염두에 두고 있는 회색 코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지금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시스템이 과연 ‘주석님의 한 마디 말씀’만으로 회색 코뿔소의 접근 위험은 완화되고 블랙스완의 출현은 봉쇄될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중국 여행의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몇 번의 여행에서 필자에게 각인된 중국의 인상은 ‘크다(大)’와 ‘많다(多)’이다. 유적지나 유물에서 대단한 예술적 아름다움이나 철학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지만 일단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스케일은 인정해줄 만했다. 수다맨으로 기억되는 개그맨 강성범씨가 왕년에 연변총각을 연기할 때마다 들었던 “연변에서는~~”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거대한 스케일’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그동안 차곡차곡 축적되어 온 거품(bubble)과 부실의 스케일은 어느 정도일까?
하루 종일 지나가는 차량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의 넓고 멀쩡한 고속도로 바로 옆에 또 길을 닦고, 주민 수 몇 안 되는 깡촌에 30여층의 호화 고층 아파트를 짓고, 그러다 보니 중국 각처에 짓다 만 아파트 단지는 즐비하고, 설령 완공되었다 하더라도 입주민이 없다 보니 유령도시가 되고··· 우리가 지난 수년간 접해왔던 뉴스들이자 저러다 일 내겠는데 싶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었기에 일종의 회색 코뿔소였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는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의 디폴트 가능성으로 인한 혼란이 정점을 향해 달리는 양상이다.
헝다의 계열사 중에는 ‘차 한 대 팔지 못한 전기차 회사’도 있다. 1년 만에 1000% 넘는 주가 폭등세 끝에 올해 3월 중 74홍콩달러도 찍으면서 860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으로 테슬라, 도요타, 폭스바겐, 벤츠 다임러 다음으로 자동차 회사 세계 5위에 올랐다. 제너럴 모터스(GM)를 뒤에 세워 버린 것. 그러나 이 헝다자동차의 주가는 9월 15일 현재 3.98홍콩달러로 마감했다. 중국에서는 버블도 저 정도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고, 주가 폭락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저 정도는 빠져줘야 한다.
헝다그룹으로 인한 혼란을 시진핑 주석이 방치하는 정치적 이유 등을 살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따위 2조 위안 정도? 또 찍어서 막지 뭐'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칼럼을 통해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첫째, 중국의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는 독(毒)이 될 것인가, 득(得)이 될 것인가 하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과연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검은 백조로 변신이 가능한 회색 코뿔소는 없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