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2위인 일본 키옥시아와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C)의 합병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 1위 삼성전자와 4위 SK하이닉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판이 흔들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집계 결과 올해 1분기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4%)가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키옥시아(18.3%), WDC(14.7%), SK하이닉스(12.3%), 마이크론(11%), 인텔(6.7%) 순이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WDC가 키옥시아와의 M&A를 추진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의 자리가 흔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다 SK하이닉스도 인텔의 낸드플래시 및 SSD 사업부 인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시장 재편은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WDC, 일본 키옥시아 인수 추진··· 2위로 성큼 올라설 듯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WDC의 키옥시아 인수 여부다. WDC는 이번 M&A를 위해 200억 달러(약 23조3000억원)의 자금을 투입, 이르면 이달 중순 무렵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수전은 반도체 내재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안을 처음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싱턴도 (이 과정에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딜은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 및 중국에 대한 경쟁력 확보 전략에 걸맞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까지도 실제 M&A 성사 가능성을 확언하기는 힘들다. 일각에서는 키옥시아가 애초 계획했던 기업 공개(IPO)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앞서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투자해 전환사채(CB)를 보유하고 있는 SK하이닉스도 키옥시아의 IPO에 무게를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콘퍼런스 콜에서 “웨스턴디지털 등이 키옥시아를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공동 투자 컨소시엄인) 베인캐피털 쪽이나 키옥시아 측에서 들은 바로는 올해 하반기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과 중국 등 관련 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사실상 일본에 남은 마지막 대형 반도체 기업인 키옥시아의 매각을 일본 정부가 승인할 것인지와 함께 미국 반도체 굴기를 중국 당국이 용인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SK하이닉스, 인텔 인수·합병··· 최대 변수는 중국 정부의 승인
SK하이닉스도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주체로서 중국 반(反)독점당국의 합병 승인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는 10조3000억원을 투자해 인텔 낸드 및 SSD 사업부를 인수하겠다고 공언, 낸드플래시 시장 주도권 싸움에 신호탄을 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말까지 관련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면 단숨에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9.6%를 기록하며 2위에 올라서게 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가 완료되면, 메모리반도체의 양대 산맥인 D램·낸드 모두 한국 기업이 ‘쌍끌이’ 성장을 이끌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마지막 제동을 걸면서 SK하이닉스의 인수 작업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이미 심사 대상 8개국 중 7개국(미국, EU, 한국, 대만, 브라질, 영국, 싱가포르)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중국 정부만이 합병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인텔 인수를 승인하면 해당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기는 것을 우려한 '중국의 몽니'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현재 (중국의 경우) 파이널 리뷰 단계로 넘어간 상태"라며 "우리가 예상하는 올해 연말 딜 클로징(거래 종료)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향후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도 D램 시장처럼 세계적 대기업의 3강 체제로 재편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다만 일본과 중국의 승인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점은 변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