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저는 블랙리스트…음식 주문해도 '거절' 메시지만 배달됩니다

2021-09-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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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5개 '공든 탑' 무너질라 소비자 가려 받는 점주들…왜? 별점=매출

별점 만점 아니라면 점주에겐 무의미…대가성 리뷰 요구하는 점주들

별점 신뢰도 떨어지자 대응 마련 나선 기업…네이버는 내년 별점 폐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최근 배달 앱으로 주문이 안 돼 어리둥절했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배달 수요가 많아 주문이 거절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단골식당에서조차 주문 거절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배달앱 오류라고 생각해 해당 식당에 전화를 걸었지만, "주문을 받지 않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 A씨가 별점 3개를 연달아 줬다는 이유에서다.

점주는 "별점 3개를 받으면 평점이 0.1점씩 깎인다. 지금까지 만점이었지만, 손님 때문에 4.7점이 됐다. 동네 점주들도 손님 주문을 받으면 안된다고 하더라. 더는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식당 점주들 사이에 블랙리스트가 된 A씨는 "리뷰 이벤트로 대가를 받지 않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게 주문 취소까지 당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일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따르면 점주들은 높은 별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만점을 주지 않은 소비자를 원망하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에게 별점 3~4개는 '보통'에 준하는 평가지만, 점주에게는 평점을 깎아내리는 점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점주는 "지난 3월 카페를 연 뒤로 줄곧 별점 5개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별점 4개를 받고 평점이 떨어져 마음이 찢어진다. 별점 5개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각종 서비스와 손편지, 감사 문자까지 보냈지만 평점이 떨어지니 많이 지친다"고 토로했다.

점주들이 별 하나마다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별점이 곧 매출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 중인 점주는 "낮은 별점을 받으면 매출이 뚝 떨어져 별점에 공들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도 별점이 떨어진 뒤로 이틀 연속 매출 하락세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별점 1개' 이벤트를 하는 점주도 생겨났다. 고의로 낮은 별점을 받아 별점 하락으로 생기는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돈가스 가게 점주는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맛있게 드셨다면 꼭 별점 1개만 달라"고 당부했다. 리뷰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돈가스 사진을 올린 뒤 "맛있게 잘 먹었다"며 별점 1개를 남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앞서 A씨 사례처럼 별점을 두고 소비자와 점주 사이에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인식의 간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보통'·'좋다'·'아주 좋다'를 각 별점 3~5개로 구분한다. 하지만 점주는 별점 5개가 아니라면 모두 평점을 갉아먹는 점수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의 솔직한 평가가 달갑지 않은 이유다.

이에 점주들이 리뷰 이벤트를 진행하며 소비자에게 별점 5개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리뷰 이벤트는 점주들이 소비자에게 후한 점수를 약속받고, 음료수나 사이드 메뉴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높은 별점을 받기 위한 일종의 '작은 로비'인 셈이다.

그 결과 가게를 평가하는 기준인 별점 시스템이 제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4명은 배달앱으로 음식점을 선택할 때 이용 후기를 가장 중요시하지만, 정작 이용 후기 신뢰도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별점 시스템을 두고 소비자와 점주의 불편한 공존이 계속되자 기업과 관계 당국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네이버는 내년 초 가게 별점을 완전히 폐지하고 키워드 리뷰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별점 대신 '재료가 신선하다', '디저트가 맛있다' 등으로 구성된 키워드 중 본인 경험과 가까운 선택지를 소비자가 직접 골라 평가하는 것이다.

별점 압박에 시달리던 점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카페를 운영 중인 점주는 "의견을 남기는 리뷰는 찬성하지만, 별점으로만 가게를 평가하는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본인 기분에 따라 별점을 낮게 줘 가게를 점수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는 별점으로 피해를 보는 점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점주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해당 정보의 유통을 막기 위해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는 정책부터 장기적 제도 개선까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리뷰·별점 제도의 순기능은 강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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