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탄소, 불평등, 인구 ..한국경제의 흔들리는 ‘지속가능성’

2021-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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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가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처음 채택하고 1992년 리우 환경 회의에서 재확인된 ‘지속가능성’ 개념은 당초 경제성장에 따른 자원고갈 및 환경파괴의 딜레마 상황에서 ‘제로성장’의 압력을 돌파하기 위한 비전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 개념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세대와 후속세대, 선진국과 후진국, 계층관계 등으로 외연을 넓혀가면서 생태적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차원도 포괄하게 되었다.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오늘날 2015년의 파리협정에 의거하여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억제하는 목표로 요약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연한 가운데 설정된 ‘2050 탄소중립’ 선언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의해 ‘신참’ 선진국으로 분류된 한국은 새로 입혀진 외투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국회가 ‘탄소중립기본법’을 입안하면서 2030년까지 35% 감축을 중간목표로 설정하는 조항에 대한 여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기후후진국’의 지위에 안주하던 오랜 의식과 관행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도 태양광 공급 확대를 의욕적으로 추진하지만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 등으로 ‘그린 워싱(녹색세탁)’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그럼에도 탄소중립을 향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다급한 이유는 ‘탄소국경세’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이미 2026년부터 도입하기로 예고했고 미국도 조만간 도입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결국 탄소중립 중간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노력은 한국상품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방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갈등과 통합의 사회적 관계를 조율하는 역량이다. IMF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작금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재난지원금은 물론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마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소극적인 것은 이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내수를 위축시켜 결국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기재부가 유럽연합 기준의 ‘재정준칙’으로 나름 ‘대못질’하려는 것은 건전재정을 사회통합과 경제성장보다 상위목표에 두는 본말전도의 신자유주의 음모이다.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다수의 유럽 나라들이 1992년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거하여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억제하고, 국가부채를 GDP의 60%까지 맞춘다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의제화되었다.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위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또는 여기에 아일랜드를 더한 ‘PIIGS’의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가부도가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우려가 오히려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려 부도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국가부도는 채무비율뿐만 아니라 채무의 구성, 채권자의 국적 및 성향 등에도 좌우되기 때문에 국가부도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은 이들 지속가능성에 더하여 ‘국민국가’ 자체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세계 최초로 제기하고 있다. 2차대전 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로 공인되는 순간에 ‘지방소멸’을 넘어 추이 상으로는 ‘국가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전대미문의 사례가 되고 있다.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은 2.1명이다. 2006년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감소하더니 2020년에는 0.84명까지 떨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40년 합계출산율을 0.73명으로 가정했을 때 내국인 인구규모는 4717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에 200조원을 지출했다는 ‘무기력한 최선’을 호소하고 있지만 ‘신발 신고 발바닥 긁기’임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청년층이 출산을 거부하는 근본원인이 ‘미래에 대한 불안’, 특히 ‘일자리 불안’에 있음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정부의 저출산대책과 일자리정책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2050 탄소중립’이 담고 있는 ‘에너지 전환’의 비전은 당연히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원자력과 석탄 중심의 현실에 묶여 있으면서 자연조건 의존도가 높은 재생에너지 공급의 불안정성을 탓하기보다 재생에너지를 공급의 중심에 두고 인간이 통제하기 쉬운 화석에너지를 보조적인 공급원으로 삼는다는 발칙한 역발상은 ‘IT강국’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모범일 수 있다. 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는 최근 탄소세를 거두어 산업구조전환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탄소세와 기본소득은 각각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일 수 있지만 이 조합은 모순적이다. 탄소세를 활용하여 에너지전환에 성공할수록 탄소세수는 세율을 높이지 않는 한 감소할 것이므로 기본소득이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가령 데이터세를 새로운 세원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은 포기할 수 없는 비전이다. ‘건전재정을 위한 건전재정’을 지양하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그린워싱’으로 오염시키지 않으며, ‘인구절벽’의 반전만이 한국경제의 총체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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