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②복잡하고도 미묘한 열광…일본이 마주한 케이팝의 시대

2021-09-04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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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화도 음악도 한국이 앞서 나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 동방신기 같은 그룹이 나올 때만 해도 일본이 조금 앞서 있었는데 순식간에 추월당했다."

지난 4월 취임한 도쿠라 슌이치 일본 문화청 장관이 취재진과의 첫 만남에서 한 말이다. 이날 도쿠라 장관은 향후 국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본 대중문화를 '세계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천명했다. 문화 발전을 총괄하는 정부 관료가 새로운 임무를 맡으면서, 특정 국가가 자국의 문화를 추월하고 있다고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현재 일본이 한국 문화의 확산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는 일본에서도 최근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 콘텐츠는 아시아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문화를 추월한 위험한 경쟁자이며, 정치·역사적으로 얽힌 한국이 생산한 불편한 문화 소비재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본 내 K-팝 수용은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른 '복잡하고도 미묘한 열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

 
"좋지만, 싫다"··· 혐한과 뒤섞인 '복잡하고 미묘한 열광' 
2020년 K-팝 관련 트윗을 많이 하는 이용자(Unique Voices)를 기준으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국가는 일본이다. K-팝이 일본 내 가지는 강력한 존재감을 반영한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나타난다. 2020년 오리콘 연간 앨범 차트 100위권에 진입한 K-팝 앨범은 26장에 달한다. 지난 7월 집계를 기준으로 월간 CD 판매량에서 50위권 내 든 한국 음반의 개수는 무려 13개에 달했다. 

2000년대 초 보아가 데뷔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The Listen To My Heart)’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일본에서 음악 한류는 시작됐다는 게 공통적 평가다. 이후 동방신기, 빅뱅, 샤이니 등과 같은 2세대 남자 그룹과 소녀시대, 카라 등 여자 그룹들도 인기를 끌었다. 이후 몇 년간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트와이스와 같은 그룹들이 다시 인기를 끌면서 2010년대 중후반부터 다시 팬덤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일본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에 따르면 동방신기의 일본 투어공연 관객 수는 2018년에만 약 128만명을 기록하면서 신기록을 세웠다. 

번역가이기도 한 시라카와 츠카사(白川 司) 문화평론가는 일본 온라인 매체 다이아몬드온라인에 게재한 'K-팝이 일본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이유(K-POPが日本の若者を熱狂させる理由)'라는 글에서 "아이돌 산업이 CD 판매와 오프라인 만남을 중심으로 한 수익 모델로 변화하면서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으로 소비의 중심이 옮겨갔다"면서 "반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층들은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소비하기 쉬운 K-팝 아이돌로 향했다"고 지적했다.

K-팝 아이돌 소비가 늘면서 일본 문화 내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시라카와 평론가는 "종래 일본의 아이돌은 '응원하는' 대상이었지만, 현재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적 재능이 많아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동경'의 존재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돌을 '미성숙'하게 바라보면서 응원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K-팝 소비가 늘면서 소비의 성향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한류 소비에 있어 소극적이며, 부정적 인식이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21 글로벌 한류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한류 대중화와 성장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한류지수에서 일본은 2.88을 기록하면서 아시아 주요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3년간(2018~2020년) 변화도 거의 없다. 한류 이용도와 집중도에서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모습을 보이며, 일본 문화의 갈라파고스 현상이 두드러지는 모습니다.

반면 한류에 대한 부정인식 공감률은 2018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인식 공감률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8년에는 29.8%였던 부정인식 공감률은 2019년에는 31.4%, 2020년에는 33.2%에 달했다. 부정인식에 공감하는 이유로는 한국과의 정치·외교적 갈등(41.6%)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국과의 역사적인 관계(34.9%), 한국의 좋지 않은 국민성(31.6%)이 차지했다. 콘텐츠 외적인 요소가 한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좋지 않은 국민성을 든 항목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는 '혐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J-팝 반성론 대두··· "음악 인재 유출 막아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은 J-팝 팬덤을 만들어내며 아시아 음악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속되지 못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매한 2020년 음악산업백서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 중 하나로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시장을 선도하는 음악산업 선진국이었지만, 음악성보다는 팬과 아티스트 간 정서적 공감대 형성을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삼은 아이돌 문화의 확산 등으로 인해 국경과 장르의 경계가 흐려지고 스트리밍 음악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 시장의 흐름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위기감은 일본 내부에서도 팽배하다. 일본 연예작가 겸 기자인 마쓰타니 소이치로는 "오랫동안 지상파 TV를 중심으로 자니스 소속의 아티스트들이 대세를 이뤘던 일본에서 국외 남성 그룹의 성장 가능성은 극히 제한돼 왔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이르러 유튜브 등 인터넷 미디어를 활용한 K-팝은 일본 시장을 열었으며, 갈라파고스 환경을 구가하고 있던 일본의 인기 음악은 단번에 글로벌한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쓰타니 기자는 "자체적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K-팝으로 데뷔한 일본인 출신 연예인은 30명 이상이 되며, 실제로 이들은 일본에서보다 10~100배 더 한국에서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젊은이의 상당수는 자신의 미래를 한국에서 개척하려고 할 뿐이지만, 일본 연예계에 있어서는 인재 유출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톱스타이자 최고의 걸그룹으로 꼽히는 AKB48에서 센터를 도맡아 왔던 미야와키 사쿠라가 한국의 하이브와 계약을 맺은 것은 최근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K-팝의 영향력이 문화 전방위적으로 커지면서, 일본에서는 아이돌 문화에 대한 자성이 일고 있다. 일본 대형 연예기획사 자니스 명예회장 후지시마 메리 야스코의 사망을 계기로 시스템 정비 필요성을 언급하는 자성론이 나오기도 했다. 
 

트와이스.[사진=연합뉴스]

 
음악을 통해 한국에 온 일본인들, 그들의 이야기
본지는 'K-팝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시리즈의 첫편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 K-팝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도할 예정이다. 음악이라는 입구를 통해 한국을 만나게 된 사사 히로코 사이버 한국어대 조교수를 비롯,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 팀B의 전 멤버이자 현재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다케유치 미유처럼 한국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 그리고 일본이라는 비교적 독특한 환경 속에서 K-팝 문화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고민도 함께 들어볼 예정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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