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종전의 날' 8월 15일, 서울, 평양, 도쿄 그리고 카불

2021-08-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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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지난 8월 15일 임기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창했던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에 대한 북한의 참가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지만, 그밖에 특별한 제안은 없었다. 남북이 손잡고 한반도 운명을 주도하자면서 남북이 평화경제를 구축해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자고 호소했던 2019년, 남북협력은 최고의 안보정책이라면서 남북 합의를 실천해 평화와 공동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던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도 약하고 대북 피로감조차 느껴졌다.
남북 정상이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한 끝에 13개월 동안 단절되었던 남북 통신연락선이 7월 27일 복원되었다. 이 사실을 남쪽에서는 청와대가 나서서 발표하고 남북 대화나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북쪽은 조선중앙통신이 “북남관계의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을 뿐 주민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

8월 1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적대적인 전쟁연습’인 한미연합훈련의 중지라는 큰 용단을 내리하고 경고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한·미가 훈련을 강행하자 8월 10일 김여정은 한국의 ‘배신적인 처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국가방위력과 선제타격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1일에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한국이 ‘엄청난 안보위기’를 느끼게 할 것이라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중단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규모나 형식과 관계없이 한미연합훈련에 강한 반감을 보여 왔던 만큼 2주 만에 통신연락선을 차단한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되었다. 7월 하순 북한은 연대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과 정치위원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 강습회를 ‘건군사상’ 처음 개최해 ‘혁명무력의 최정예화, 강군화’ 노선의 철저한 관철을 결의했다. 그러나 8월에 들어 폭우와 홍수로 함경도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하자 북한은 내각과 성, 중앙기관 간부들로 ‘큰물피해복구중앙지휘조’를 조직해 피해복구와 피해지역 인민들의 생활보장을 위해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경제제재와 코로나와 함께 지난해에 이은 홍수피해라는 ‘3중고’는 여전히 북한의 대외행동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조국해방 76년이 되는 8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항일투쟁에서 ‘피로써 맺어진 조로친선’과 2019년의 북러정상회담의 의미를 강조하는 축전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보내고 리일환 당 비서를 보내 해방탑에 화환을 진정(進呈)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는 “일본의 과거 범죄를 끝까지 계산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840만여 명의 강제노동 피해자와 100여만 명의 위안부 피해자를 언급하면서 일본이 저지른 침략행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올바로 반성하고 청산하는 것이 일본의 법적 책임이고 도덕적 의무라고 역사문제를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일 간의 현안과 글로벌한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지만,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맞는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한일 간의 걸림돌은 과거사 자체가 아니라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의 부침이라면서 정치지도자의 용기 있는 자세를 촉구했지만, 양국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종전의 날’인 8월 15일 오전 하기우라 고이치 문부과학상을 비롯한 세 명의 각료가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단죄받은 14명의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날 정오 천황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수장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스가 총리는 부전(不戰)의 뜻은 밝혔지만, 전쟁의 교훈과 근린제국에 대한 가해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93년의 추도식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일본이 피해를 준 아시아 근린제국을 포함해 “모든 전쟁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국경을 초월해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가해책임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듬해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애도와 함께 ‘깊은 반성’을 표명했으며, 이후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반성과 애도’ 표명은 역대 총리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 등장 이후인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아베 신조 총리는 추도식에서 ‘애도와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에게 과거는 더 이상 반성과 사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2015년의 추도식에서 천황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을 처음으로 표명했다. ‘침략’ 전쟁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천황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언급한 것은 일본 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020년 9월 아베 정권의 계승을 표명하고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지난해 아베 총리의 식사를 거의 그대로 답습해 ‘애도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2019년 5월 즉위한 현 천황은 2019년부터 3년 연속 ‘깊은 반성’을 표명했다.

국제정치가 국가 간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듯이 한일관계도 양국의 상호작용으로 구축된다. 한일 양국이 관계악화의 책임을 상대방에 전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맞게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와 ‘국제법 위반상태를 한국이 시정하라’는 일본 입장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는 양국이 어떻게 공통의 이익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8월 15일 저녁 한반도에서 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정권이 붕괴했다. 지난 4월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9.11 테러 20년이 되는 9월 11일까지 주둔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4개월 만에 6만 명으로 추정되는 반정부 탈레반 세력이 수도 카불을 완전히 점령한 것이다. 치안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했던 현지인과 가족을 한국으로 안전하게 수송하는 데 성공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거둔 쾌거이기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충격적 상황은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우리 사회는 다른 선진국보다 ‘난민’ 인정에 인색하고 정부는 국내로 데려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법에도 없는 ‘특별기여자’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26일 카불공항 근처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철수 후에도 자국민 탈출을 위해 추가파병을 시사하고 보복 의사도 밝혔다. 보복을 위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또 다른 테러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20년에 이르는 ‘가장 긴 전쟁’이 남긴 부(負)의 유산은 바이든 행정부를 정치적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감염전파력이 높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9월 하순 2년 만에 대면 회의로 개최하려던 유엔총회는 유동적이다. 그러나 유엔총회와 G20 및 APEC 정상회의 등 임기 마지막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서 문 대통령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 ‘종합군사력 세계 6위’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어떻게 관여해갈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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