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눈물 하소연

2021-08-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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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따로 현실 따로..편법 부추기는 중소기업 정책

[임병식 위원]

최근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J대표와의 만남은 시종일관 우울했다. 중소기업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듣다 보니 덩달아 한숨이 나왔다. 코로나19 장기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콩나물과 두부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이 회사 대표는 이대로라면 폐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허탈해했다.

이날 대화를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 주 52시간제는 현장을 모르는, 불법을 부추기는 대표적 탁상행정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도 주 52시간제를 시행 중이다. 이후 중소기업 현장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근무시간이 줄어 급여가 대폭 깎이자, 근로자들이 주 52시간을 편법으로 운용하는 사업장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법 따로, 현실 따로 움직이는 실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 법인을 여러 개로 쪼개는 수법이다. 동일한 사업장에 여러 법인을 설립해 주 52시간제를 피하는 방법이다. 전체적으론 주 52시간을 초과하지만 법인별로 쪼개 법망을 빠져 나간다. 또 휴게 시간을 편법으로 운용하는 수법도 동원된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은 휴게시간으로 돌린 뒤, 실상은 근로시간에 산입해 급여를 지급하는 방법이다. 이 모든 게 편법이지만 인력난을 피하려는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일상화됐다.

J대표는 “주 52시간제 이후 기본급을 32% 인상했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은 편법 사례를 제안하며 근무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응할 수 없다고 하자 퇴사했는데, 대부분 주 52시간제를 편법 운용하는 회사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정부가 사실상 법을 어기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비현실적인 제도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50인 이하 사업장만큼은 제도 적용을 예외로 하거나 코로나19 이후로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J대표가 제기한 다른 문제는 실효성 없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업종에 대기업 진입을 제한하는 제도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현장에서는 겉돌고 있다. 대기업이 콩나물과 두부사업 유통망을 장악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하청업체 신세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로 생산원가는 상승했지만 대기업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콩나물과 두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정부 지침 때문에 중소기업은 정부와 대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J대표는 “근로자들이 퇴사하면서 숙련공 비율은 10%로 떨어졌다. 또 생산원가는 올랐지만 대기업 납품 단가는 수년째 그대로다. 이 때문에 매월 1억원씩 적자이며, 누적 적자만 190%에 달한다. 월 매출도 10억원에서 5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연말까지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을 생각이다. 기업 규제할 에너지가 있거든 현장에 나와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길 바란다”며 정부 정책을 질타했다.

하지만 J대표로부터 기업 의욕을 앗아간 건 따로 있었다. 기업주를 적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과 고질화된 고소고발 행태였다. 또 주인 의식이 사라진 근로 의식도 문제였다. J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땀 흘려 일하려는 분위기가 실종됐다. 힘들어도 해보자는 의지만 있다면 이겨낼 터인데 그렇지 않다. 대통령을 만나면 현실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청원제도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J대표는 “언론에서 국민청원에 동의한 숫자를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하는데 중단해야 한다. 취지와 달리 기업인 의지를 꺾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강조했다.

J대표와 대화를 끝내고 돌아온 이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며칠 전 직원들을 내보낸 뒤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이 말을 하다 그는 또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싶어 안타까웠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 복지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0% 이상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 현장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건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 제공과 다름없다.

코로나19 이후 금융 대출과 중소기업은 한계에 몰려 있다. 실적 부진, 대출 증가, 재무 건전성 악화로 더는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이 124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은 무려 633곳(51%)으로 집계됐다.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영업이익으로 대출금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7월 말 기준 531조2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1월 말(448조원)에 비해 83조원이나 급증할 만큼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은 중소기업에는 직격탄이 됐다. 정부는 중소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두 차례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유예해 줬지만 자금 사정은 악화일로에 있다. 정부와 여당은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 이후 원리금 상환을 재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핵심은 금융 부담을 덜어주는 것뿐 아니라 정부가 강행한 노동정책에 있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 탁상행정 때문에 의도와 달리 중소기업은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

수도권 4단계 거리 두기가 9월 5일까지 또 연장됐다. 영업시간도 밤 10시에서 9시로 단축됐다. 정부는 거리 두기 강화에 따른 고용 충격은 8월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제라도 현장에 나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처한 현실을 파악해 현실적인 제도운용과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 전북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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