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트럼프 전 행정부가 부과한 대중 제재 관세를 유지하고,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확대했다.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홍콩의 인권 탄압에 대해 비난도 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행정부보다 압박 강도를 높였다. 물론 큰 틀에선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정부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기후변화가 중국의 날조라고 주장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글로벌 이슈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공통점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측도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3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과 경제회복, 기후변화 등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미·중 간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소강상태에서 양측이 경쟁과 협력의 밸런스를 잡고 있다는 징후를 찾기는 어렵다. 기후변화 등에 대한 미·중 협력이 진전되고 있는 모습도 포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미·중이 극한대립 관계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중국이 패권국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것을 우려하고, 중국은 자신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미국이 막는다고 생각하는 ‘제로섬’의 강박관념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역시 지정학적 적대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지만 미세한 풍향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미·중의 경쟁은 기술의 우위성이나 안전 보장, 무역, 글로벌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국익에 관련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 미친다. 특히 기술과 경제안보는 어느 때보다 깊이 맞물려 있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미국은 양국관계를 정권별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강온의 대응을 해왔다. 클린턴 행정부(1993~) 때는 ‘건설적 전략관계’로 설정했다. 부시정부(2001~) 때는 ‘책임있는 관계자’, 오바마 정부(2009~) 때는 대중 유화정책을 펼쳤다. 이 기간에 등장한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내건 도광양회(韜光養晦)로부터 대전환이다. 그후 시진핑 주석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다. 미국이 지금껏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정책이다. 오마바 대통령의 뒤를 이은 트럼프 정부(2017~) 때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와 ‘현상 파괴세력’으로 규정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양국관계의 변화를 잘 읽고 있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를 넘어 어떻게 중국을 규정할 것인가가 지금부터 최대 관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3일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회 전체회의 (5중전회의)가 채택한 제14차 5개년 계획안과 2035년까지 장기목표안의 개요를 공표했다. 미국 등과의 기술패권전쟁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강국’ 건설을 서둘러 인공지능(AI) 등 첨단분야 연구에 국가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선언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술혁신(이노베이션)을 핵으로 성장해 2035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배로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서 최근 스탠퍼드 대학과 일본경제신문이 분석한 몇 가지 국제 과학기술력 통계는 매우 의미있는 시사점을 보여준다. 상위 10% 이공학계 논문의 주요국 추이를 보면 2018년에 1위인 미국을 중국이 추월했다. 2021년 현재 AI 톱 클래스 연구자의 출신국은 중국 29%, 미국 20%, 유럽 18%, 인도 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AI 논문 발표건수(2012~2021년)는 중국이 약 25만건으로 미국의 16만건을 크게 앞선다. 미국과 중국의 AI 관련 논문 인용 건수 점유율은 2020년에 중국이 미국을 따라 잡아 ‘질’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능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국들의 IoT(사물인터넷) 기기 도입수는 2030년 세계 전체의 250억대 가운데 중국이 90억대에 육박하여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결과에서 얻은 자신감은 중국 정부의 대외 선언으로 나타난다.
지난 5년간 세계를 선도해 온 제4차 산업혁명의 추이는 지금부터의 미·중관계를 점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포럼(WEF)에서 제4차 산업혁명시대 도래를 선포했다. 5년여가 흐른 지금 세계는 AI, 메타버스 등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실물과 사이버의 융합시대다.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합해 극한으로 스마트화하고 있다. 이들을 아우르는 국가전략의 중핵(中核)에 신산업정책이 자리한다. 신산업정책은 국방을 포용하며 경제안보를 이끌게 된다. 이러한 연계점에서 볼 때 G2(미·중 2대강국) 간의 관계는 경쟁과 마찰에서 협력 쪽으로 부등호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편이 쌍방에 훨씬 이득이 되고 글로벌 체제에서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길게 보면 미·중 갈등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져 세수입이 증가하지 않게 되면 국외에서 군사 활동을 계속할 여력이 없어진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기로 한 것은 주둔 부담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도 2030년대부터는 3%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은 GAFAM(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빅데이터를 이용한 경제 독과점을, 중국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국가 안보 저해를 우려하고 있다. 동병상련의 구조다.
중국 경제에 대해 25년 넘게 낙관적 시각을 견지해온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시니어 펠로(전 모건 스탠리 아시아 회장)는 “중국 정부가 최근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IT(정보기술) 기업 집중 규제에 나선 것은 국가가 애니멀 스피리츠(혈기)를 억제하려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국 100년인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이루겠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세우는 중국의 꿈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터넷 통신판매 최대기업 알리바바그룹의 경우 작년 11월 산하 금융 회사 안트(개미)그룹의 대형 상장이 당국 지시로 연기됐다. 올 4월에는 독점금지법 관할당국이 알리바바에 약 182억 위안(약 3100억엔)의 벌금 처분을 내렸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은 지난 6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지만 중국 규제 당국이 7월 ‘국가안전법’과 네트워크 공간의 통제를 강화하는 ‘인터넷안전법(사이버보안법)’에 근거해 심사와 현장조사를 했다. 텐센트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으며, 배달 앱 1위인 미단도 조사를 받았다.
AI를 활용해 분석하는 빅데이터의 소유권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다. 데이터 중 상당 부분이 국가에서 수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IT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혼합형 경제 체제인 중국에서는 국가가 시장과 기업, 소비자를 훨씬 적극적으로 지도한다. 정부의 IT기업 공격은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창의성과 에너지, 순수한 노력을 빼앗는 것이다. 기업가의 에너지가 없으면, 중국의 뉴 이코노미의 창조력은 없어져 중국 독자적인 이노베이션 확대의 기대도 시들어 버릴 것이다. 로치 펠로의 주장은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의 최신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경제는 지난 2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장래의 비관론도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2008년 9월 리먼 쇼크(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대규모 재정 지출로 재빨리 극복헀으나 지금까지 과잉 채무와 과잉 투자, 과잉 생산의 문제가 경제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인구 감소 등 인구 문제도 경제성장의 최대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부터 가장 빨리 탈출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코로나를 조기에 막아 경제회복에 진력해 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2분기부터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여 올해 전년비 8.5% 성장, 내년에 5.4% 성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중국보다 1년 늦어 올 2분기부터 백신접종에 힘입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돌파해 올해 6.8%, 내년 4.2%의 성장이 전망된다. 유로권이나 일본은 뒤늦게 올 4분기에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 경제력의 접근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의 유사경로는 향후 미·중관계를 점치는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지금의 소강기는 디커플링(분리)으로 상징된 두 나라 관계가 커플링(접근)으로 가는 잠복기에 해당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분석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탈출했지만 백신 위기에 봉착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각국은 앞다퉈 ‘위드 코로나’를 선언할 태세다. 미·중이 훨씬 앞서가고 다른 주요국들이 뒤따라 뛰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