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방학도 막바지여서 이번 주 휴가를 내기로 했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알려준 '서울 숲속 가족 나들이 서울 도보 해설관광 코스 3곳'을 아이와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더위도 한풀 꺾였으니 둘러보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해서 선택한 나들이 목적지다.
선정릉 숲속에 감추어진 조선 시대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살펴보고, 양천로 겸재 정선의 풀내음 가득한 산책로 숲길을 지나 양천고성지와 소악루에서 보이는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자연 풍경과 국립중앙박물관 정원······. 도심 속 숲길을 한가롭게 거닐며 가족과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그렇게 여름의 막바지를 알차게 보내기로 한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강남,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곳이 있다. 유적지로서의 역사적 의의뿐만 아니라 빌딩 숲으로 가득한 강남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선정릉'이다.
복잡한 강남 도심에서 조선 시대 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선정릉은 왕의 무덤의 역할 외에도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담고 있어 당시 조선의 풍수 사상과 엄격한 유교적 예법을 중시한 모습을 능의 공간배치 구성이나 능의 형태, 무덤 앞에 설치된 묘석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선의 독특한 문화와 사상을 인정받아 2009년, 조선왕릉 44구 중 40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선정릉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푸르른 나무숲이 시민들을 반긴다. 첫 코스 지점인 재실까지 향하는 길이 그리 길진 않지만, 주위의 풀내음을 맡으며 걷기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제례 장소인 정자각을 지나 첫 왕릉인 성종 능까지 울창한 나무들이 모여 그늘을 드리운다. 자연의 넓은 햇빛 가림막을 갖춘 이곳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 참 달콤하다.
선정릉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지역이지만 성종 능을 지나 정현왕후 능까지는 오르막길이다. 물론 숲속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종의 가족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오르막길은 끝이 난다. 성종 능의 묘석과 조형물들을 잘 확인한 다음, 정현왕후 능과 중종의 것과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누구나 다들 지갑 혹은 주머니 속에 겸재 정선의 작품 한두 장씩은 가지고 다닌다. 1000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절경이 바로 겸재 정선의 작품인 '계상정거도'다. 최근 삼성 일가 고(故) 이건희 회장 소지의 미술품 기증 2만3000여점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인왕제색도’ 또한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다.
이와 같은 작품들의 갈래인 진경산수화풍이 가장 무르익었을 적이 바로 양천현(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거주했던 65~70세의 겸재 정선, 그리고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양천로 겸재 정선’이다.
앞서 언급했듯, 양천로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양천 현령(지금의 양천구청장) 시절 생활이 담겼다.
서울 양천향교역에서 내리면 마주하게 되는 하마비는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이를 등지고 언덕길을 따라 약 500m를 올라가면 서울에 위치한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 터'에 닿는다.
양천향교는 조선 시대에 기틀이 확립된 지방 공립 교육기관으로, 현대까지 인재양성 정신을 답습해 한시나 서예, 예절 등 전통문화 강좌를 진행해왔다. 다만 최근 강화된 수도권 거리 두기 영향으로 현재는 양천향교와 향교 내의 교육행사가 일괄 운영 중단됐다.
한여름의 후텁지근한 열기를 피해 겸재 정선 미술관에서 실제 겸재 정선의 양천현령 당시 생활상과 현령 재임 기간 작품들을 감상하기로 한다.
실제 그가 영감을 구해 작품을 그렸던 장소가 궁금하다면 미술관 뒤를 돌아 해당 지점인 소악루까지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겸재 정선이 궁산(宮山) 산책로에 올라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에 다다르면 드넓은 한강 줄기를 따라 여러 산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다. 또 '겸재 정선 미술관'에서는 위와 같은 풍경을 그린 작품들과 그의 일대기를 관람할 수 있다.
도보 가능한 궁산 근린공원의 약 2km 역사·문화 둘레길과 산책로가 길 따라 쭉 이어진다. 정상이 고작 74m이지만, 산책로 코스 내의 소악루와 양천고성지에서 드넓은 한강 상류와 덕양산의 경치를 바라보고 둘레길의 쾌청한 숲을 걸으며 마음을 정화하는 데엔 부족함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넓은 숲과 공원까지······. 마지막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이 품은 8월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갈래갈래 나뉜 푸릇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보이는 거울 못과 미르 폭포에서 땀을 식힌다.
폭포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용산 가족공원에서는 곳곳의 예술 조형물을 비롯해 자그마한 주말농원,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코스 주변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이제 막 한글을 접하는 아이들을 위한 한글 놀이터 체험도 운영 중이다.
푸른 숲에 둘러싸여 우거진 녹음과 함께 우리나라 석조 예술문화까지 느껴볼 수 있는 도심 속 휴식공간, 마지막 국립중앙박물관 정원 코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석조물 정원'은 우리나라 전통 조경을 도입했다. 곳곳에 석탑과 불상, 승탑 등 석조물들이 펼쳐져 있다. 이를 통해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까지의 국보급 석조문화재를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고, 각기 구조물들의 시대적 특징을 비교해보며 우리나라 석조 문화를 파악해볼 수도 있다.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상징물인 '청자정'을 지나 박물관 오솔길로 들어오면 나무숲에 휩싸여 사방이 녹색공간으로 변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미르 폭포에서 용산가족공원으로 향하는 길의 대나무 숲에서 고즈넉한 적막과 여름의 향취를 만끽하는 것도 좋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용산가족공원 내 주말 농원, 다양한 여름꽃과 나무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