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자 물류 대란이 터졌다.
외출에 부담을 느낀 많은 중국인들은 생필품의 상당 부분을 택배로 조달했다.
가맹제로 운영되는 다른 업체와 달리 직영 물류망을 갖추고 있어 비상 시국에 보다 신속하게 회사를 추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도시 전체가 봉쇄된 후베이성 우한에 마스크·방호복 등 방역 물품을 가장 신속하게 수송한 곳도 순펑이다.
60대가 넘는 화물 전용기를 운영하는 등 항공 운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순펑은 중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택배 업체로 꼽힌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동력 역시 높은 신뢰도였다.
그랬던 순펑이 지난 1분기 적자를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2분기에는 소폭 흑자를 냈지만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건 분명해 보인다.
택배업 의존도를 낮추고자 신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 몸집은 커지는데 이익은 줄어드는 이유다.
매출 기준 중국 최대 택배 업체인 순펑이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화 상태에 달한 택배 시장에서 허우적대다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질지, 스스로의 각오처럼 종합 물류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상장 후 첫 적자, 일시적 현상인가
올 들어 순펑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지난 3월 17일 발표된 순펑의 지난해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1540억 위안(약 27조원)으로 전년보다 32.2% 증가했다.
배달 물량은 81억4000만건으로 무려 68.5% 늘었다. 순이익은 26.4% 급증한 73억3000만 위안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소비가 확대되면서 택배 물량이 폭증한 덕이다. 그렇더라도 경쟁 업체보다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4월 8일 순펑이 올해 1분기 실적을 공시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매출은 426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27.1% 증가했지만, 순손실 규모가 11억34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에 8억3200만 위안의 순이익을 거둔 걸 감안하면 감소폭이 -236.28%에 달한다. 2017년 선전 증시에 상장한 이후 분기 기준으로는 첫 적자 전환이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지난 2월 5681억 위안까지 치솟았던 시가총액이 1분기 실적 발표 뒤 3313억 위안으로 쪼그라들었다.
대장주가 흔들리자 동종 업계 전체가 요동쳤다. 실적 발표 이튿날 순펑이 하한가를 기록하자 또 다른 택배 업체 위안퉁과 윈다 주가는 3% 넘게 떨어졌고, 선퉁과 중퉁 주가도 1% 이상 빠졌다.
순펑 창업자인 왕웨이(王衛)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사과한다. 1분기에는 정말 경영이 엉망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순펑 측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신사업과 택배 물류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증가한 데다 업무 중첩으로 비용 부담이 커졌다"며 "춘제(春節·중국 설)용 직원 보조금 지급 확대와 택배업의 전반적인 이익률 하락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적자 기조가 오래 가진 않았다. 지난 13일 순펑은 2분기 실적 전망치를 발표하며 6억400만~7억3400만 위안의 순이익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측도 시장도 한숨 돌렸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흑자로 돌아섰다고는 해도 분기별 순이익 규모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건 우려스럽다.
중국 택배 시장에서 업체 간 출혈 경쟁에 따른 이익률 하락은 이미 고질이다.
순펑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신사업 육성과 신시장 개척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지난 1분기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 아니라 장기화할 수도 있다.
광저우하만컨설팅의 왕빈셴(王繽嫻) 브랜드 담당 고문은 "순펑이 적자를 낸 건 매출이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라며 "시장 내 입지를 비롯해 전략적 변화기에 선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고가 이미지 퇴색, 지방을 뚫어라
중국에서 순펑이 쌓아 온 브랜드 이미지는 '비싸지만 빠른 택배'다.
직영 물류망을 고수하는 탓에 가맹점 위주의 다른 업체보다 운영 비용이 더 들지만 신속한 배송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첸잔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중국 택배 업체 시장 분석 및 경쟁 전략 연구 보고'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택배 시장에서 순펑의 점유율은 59% 정도다.
국가우정국의 EMS와 더불어 프리미엄 시장의 80% 이상을 양분해 왔다.
다만 2018년을 기점으로 이 같은 판도에 변화가 생겼다. 징둥이 택배업에 뛰어들며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선 데다, 위안퉁 등 다른 업체들도 프리미엄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기 시작했다.
2018년 순펑의 매출은 909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27.6%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34억8000만 위안으로 3.8% 감소했다. 고가 전략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증거다.
프리미엄 시장 내에서도 출혈 경쟁이 본격화했다. 실제로 순펑의 배달 건당 평균 가격은 2018년 23.26위안에서 2019년 21.94위안, 지난해 17.77위안으로 하락세가 완연하다.
반면에 배달 물량은 2018년 38억건에서 2019년 48억건, 2020년 81억건으로 늘었다.
대도시 중심의 고가 전략이 벽에 부딪힌 순펑은 3선(인구 100만명 정도의 지방 거점) 이하 도시와 농촌으로 영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이 지역에서 발생한 매출은 441억 위안으로 전체의 28.7% 수준까지 확대됐다.
정레이(鄭磊) 신바오파이낸셜 이코노미스트는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게 순펑의 유전자이지만, 지방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관련 전문가들을 적극 충원하며 경쟁력을 높여 왔다"며 "지방의 경우 이익률이 높진 않지만 독립적인 사업 단위로 운영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온·오프라인 융합과 전자상거래 발달로 농촌과 도시 간 유통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전체 택배 물량의 20%가 농산물일 정도다.
순펑은 중국 최고 수준의 콜드체인(냉장·냉동 운송 체계)을 자랑한다. 지방과 농촌 지역 공략에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훙타오(洪濤) 베이징공상대 상업경제연구소 소장은 "순펑은 다른 업체보다 신선 제품 운송량이 많다"며 "신선 제품과 의약품 등은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인 만큼 지속적인 투자를 해온 기업이 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00조원 시장, '물류 제국'을 꿈꾸다
왕웨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순펑은 미래를 위해 종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진력하겠다"며 "우리가 겨냥하는 건 4000억 위안 수준의 전통 택배 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물류 시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의 전체 물류 시장 규모는 12조 위안(약 2125조원)으로 추산된다.
독자 항공사 설립, 후베이성의 국제 물류 허브 프로젝트, 중국 전역 46곳의 산업단지 내 물류 단지 건설 등, 지난 수년간 순펑이 종합 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추진해 온 사업들이다.
특히 산업·공급 사슬의 전 영역을 관통하는 물류 시스템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원자재 구매·공급, 완제품 유통, 사후 서비스까지 모두 책임지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물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정레이 이코노미스트는 "순펑이 산업·공급 사슬의 디지털화 전환을 꾀하는 건 디지털 경제 시대를 대비한 전향적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전환 과정에서 제어 및 확장의 속도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사업 확대와 수익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재무제표가 흉하게 변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경험이 있다. 순펑은 2010년부터 온라인 소비와 관련한 배송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직접 전자상거래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2년 온라인 쇼핑몰인 '순펑 유쉬안(優選)'을 론칭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쇼핑몰과 편의점을 결합한 형태의 O2O(온·오프라인 통합) 매장 '헤이커(嘿客)'를 오픈하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헤이커 부문에서만 3000억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끝에 사업을 접었다. 다른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대부분 철수한 상태다.
왕빈셴 고문은 "순펑의 비즈니스 포석을 보면 진취성과 향상심을 느낄 수 있다"면서도 "신사업이 아직 폭발하지 않았고 기존 사업이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투자 활동이 다소 급진적인 측면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순펑이 변화에 성공해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을 수 있을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