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플로리다 아파트 붕괴 사고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했어요. 그 아파트는 1981년에 지어졌더라고요. 1971년 완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10년은 더 오래됐으니…남의 일이 아니죠. 어느 날 갑자기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시범아파트 주민 A씨)
# 벽과 천장에 금이 간 것은 둘째 치고 여기저기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요. 상황이 이런데도 재건축은 하세월이네요. 내년 3월에 대선이 있으니 조만간 재건축해주겠다면서 선심 쓰는 척하겠죠. 여의도 재건축은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 지 오래예요."
시범아파트, 재건축 골든타임 지나간다
올해로 입주 51년차를 맞은 시범아파트는 서울 대표 낡은 아파트 중 하나다. 우리나라 아파트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중앙난방이 도입되는 등 부촌 아파트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과거 영광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시의회와의 시정 질문에서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현장 방문하고 경악했다. 강한 충격으로 뇌리 속에 남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외벽 갈라짐으로 인한 빗물 침투, 시멘트 마감 낙하, 외벽·내벽크랙, 천장 내려앉음, 구조물 낙하 및 누수 등 안전사고 유형이 다양하다. 주민 A씨는 “누수, 누전으로 인한 화재위험은 일상화된 지 오래”라며 “여의도 일대 아파트들은 노후화돼 자동차 위에 콘크리트가 낙하하는 등 낙석피해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한테 떨어졌어봐라.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시범아파트는 지난 2017년 안전진단 D등급(즉시 재건축) 판정을 받은 후 2017년 6월 1일 한국자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 이후 용적률 282%를 적용한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2018년에 주민공람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해 6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상위계획(지구단위계획)과의 정합성을 사유로 정비계획변경안을 보류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구단위계획이 수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여의도 일대 아파트 집주인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빠른 재건축을 약속했으나 기대한 수준의 속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구단위계획 연내 확정되나...단지별 의견 엇갈려
시장에서는 서울시가 연내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나선 만큼, 여의도 재건축의 문이 조만간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진행한 지구단위계획 관련 단지별 간담회에서 높이 완화, 통합·분리 재건축, 기부채납 비율 완화 등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며 “용적률을 더 높여 달라, 기반시설 부담률을 줄어달라 등 다양한 요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마련한 여의도 지구단위계획 초안에는 여의도 아파트지구(제3종 일반주거지역) 11개 단지를 8개 특별계획구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내용이 담겼다. 8개 구역은 △목화, 삼부 △시범 △삼익 △은하 △장미, 화랑, 대교 △한양 △광장 △미성 등으로 구분했다. 여의도 금융지구(일반상업지역)는 4개 특별계획구역(△수정 △공작 △서울 △진주)으로 나눠 개발할 예정이다.
여의도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일반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각각 용도지역이 상향된다. 준주거지역은 400%, 일반상업지역은 600% 수준을 적용받을 것으로 알려진다.
2018년 보류된 시범아파트의 정비계획변경안은 용적률 282%를 적용했었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용적률이 400%로 올라가면 일반분양 물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부채납 비율은 25%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에는 시범아파트가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계획됐던 만큼, 계획안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기부채납 비율이다. 서울시는 과거 여의도 3종 일반주거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꾸면서 용적률을 최대 600%까지 올려주는 대신, 부지의 절반가량인 40%를 기부채납으로 요구했다가 소유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같은 구역으로 묶인 단지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도로로 단지가 분리돼 있는 광장아파트는 1~2동은 통합 재건축을, 3~11동은 단독 재건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법정 다툼 중으로 2심 결과는 연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목화아파트와 삼부아파트는 분리재건축을 원하는 상황으로, 특히 목화에서 단독 재건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 대표는 “광장아파트는 앞동의 용적률이 240% 수준, 뒷동이 190% 수준으로 대지지분 차이가 크다”며 “더구나 앞동은 안전진단도 통과하지 못했다. 광장아파트는 시범에 이어 두 번째로 재건축 속도가 빠른데 통합 재건축을 하면 속도가 늦춰질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계획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지구단위계획 초안에 대한 주민협의 후 교통영향평가 등 입안을 한 뒤 주민공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주민의사를 사전에 청취하는 단계로,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주민들이 원치 않으면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주민의사를 파악하고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내 확정이 목표”라면서도 “주민열람 뒤 도시건축공동심의를 거쳐 지구단위계획을 확정고시하는 등 법적인 절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