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용인 곰 탈출' 일주일째…빠삐용 곰이 남긴 숙제는

2021-07-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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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사육 곰 장려 정책, 용인 곰 탈출 사건 계기로 존립 갈림길에

사육 곰 농가, 과거 불법 웅담 채취 논란으로 국민청원에 언급돼

사육 곰 중성화 수술로 증식 금지했지만...사육 곰 농가서 곰 36마리 불법 증식

곰 보호시설 2024년 조성 예정…하지만 곰 보상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경기 용인의 곰 사육농장 [사진=연합뉴스]


반달가슴곰 2마리가 지난 6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사육농장 철창을 부수고 탈출했다. 이른바 '빠삐용 곰' 탈출 사건이다.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하는 빠삐용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빠삐용 곰의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 마리는 흙을 밟은 지 2시간 만에 사살됐다. 나머지 한 마리는 1주일째 오리무중이다. 탈출한 곰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자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탈출한 곰들이 비좁은 철창 안에서 개 사료를 먹으며 지낸 사실이 알려지자 탈출은 곧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4일 용인시에 따르면 곰이 탈출한 사육농장 주변에는 무인트랩과 열화상 카메라가 각 3대씩 설치됐다. 탈출한 곰 1마리가 사살됐다는 소식에 동물보호단체의 항의가 이어지자 나머지 곰은 생포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곰의 행방이 묘연해 용인시는 난감한 상황이다.
해당 곰 사육농장에서 곰이 탈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는 성인 남성 몸무게와 맞먹는 반달가슴곰(70㎏) 2마리가 인근 야산으로 탈출했다가 모두 사살됐다. 같은 해 4월에도 이 농장에서 탈출한 곰이 50대 여성 등산객의 다리를 물고 달아나다 사살됐다.
 

[사진=녹색연합 제공]


동물·환경보호단체는 곰 탈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로 '열악한 사육 환경'을 꼽았다. 녹색연합은 "국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사육은 법적 사육시설 규정에 따라야 하지만 사육시설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폐사하는 사육 곰도 지난 5년간 7마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에 곰이 탈출한 농가는 시설개선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환경부로부터 5년간 10차례 이상 고발과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국내 사육 곰 사업은 1981년 당시 농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정부 주도로 처음 시작됐다. 이때 정부는 곰 수입을 장려했고 1985년까지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 곰 493마리가 수입됐다. 1985년에 방송된 대한뉴스도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관리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키울 수 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쓸개)과 피, 가죽은 국내 수요뿐만 아니라 수입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 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보호하자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1985년에 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여기에 1993년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수출마저 가로막혔다. 정부는 수익이 끊긴 농가를 달래기 위해 10년 이상 자란 곰에 한해 웅담 채취를 허용했다. 그러나 웅담을 대체할 신약이 속속 등장하면서 웅담 수요는 감소했고, 사육 곰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2014년에 사육 곰 증식이 금지됐다.

사육 곰 증식 금지 조치에 따라 사육농가는 사육 곰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중성화'하거나 관할청 허가를 받고 번식이 가능한 '전시 관람 용도'로 변경해야 했다. 하지만 일부 농가는 전시 관람 용도로 신고한 뒤 전시 목적 규칙을 이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육 곰을 증식시켜왔다. 불법 증식된 곰은 법으로 금지된 살코기와 발바닥 등 식용 목적으로 길러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농가도 관할청 허가 없이 곰을 임의로 번식시키고, 식용 목적으로 살코기를 채취한 혐의(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동물보호법 위반)로 동물단체로부터 고발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녹색연합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정부는 사육 곰 문제를 더 방치 말고 해결하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에서 "사육 곰은 좁은 철창에서 나고 자라 평생 자연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부실한 먹이로 신체적 건강 문제는 물론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행동까지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종식 노력이 없다면 사육 곰은 20년 이상을 철창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사육 곰을 보호할 수 있는 생추어리(Sanctuary)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생추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그들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해 죽을 때까지 보호하는 장소다.

환경부도 사육 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례군과 함께 2024년에 곰 생추어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국에 있는 사육 곰을 한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사육 곰은 곰 농장주들의 사유재산인 만큼 보상비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육농장을 탈출한 뒤 사살된 곰 1마리는 렌더링(사체를 고온·고압에서 태워 유골 분으로 만드는 것) 방식으로 처리됐다. 남은 유골 분은 퇴비로 재활용돼 곰은 비로소 자연으로 돌아가게 됐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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