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함께 찾아오는 불청객, 폭염이 올해에도 맹위를 떨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서울과 경기, 광주와 전남 내륙에는 올해 첫 폭염 특보가 내려졌다. 서울과 대전, 광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2도를, 나주와 담양은 33도에 달하는 무더위가 시작됐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폭염의 발생 빈도와 강도,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한국도 지난 2018년 폭염일수가 35일을 기록하며 1994년 폭염의 기록을 경신했다. 일수 뿐만 아니라 여름 기준 평균기온과 최고기온, 온열질환자 등도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한국의 폭염 대응 체계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여전히 자연재해를 전제로 대응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재해 대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정책으로 폭염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연구원은 '폭염과 서울시민의 생활양식 변화' 보고서를 통해 "폭염의 사회적 영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도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폭염대책을 수립하려면 폭염 피해의 인구사회학적 정보와 폭염기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사회문화적 기초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명 중 1명 "수면의 질 나빠져"… 취약계층 특성별 고충·정책 대안 달라져야
폭염은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원이 실시한 서울시민 생활양식 패널조사에 따르면 2019년 폭염기 서울시민의 23.1%는 수면의 질이 낮아졌다. 평일 저녁식사를 집에서 해먹다가 배달이나 외식으로 바꾼 경우도 6.8%였다. 주말에는 외식이나 배달을 했다는 사람의 비율이 10.1%로 더 크게 증가했다. 또한 14.3%는 평일 여가활동을 거르거나 장소를 실내로 바꿨다.
또한 폭염으로 인해 주관적 건강수준이 나빠졌다고 답한 사람은 14.6%, 정신건강이 나빠졌다는 응답도 10.6%가 나왔다. 걷기 실천과 중등도 신체활동이 줄어든 집단도 각각 14.1%, 14.5%였다. 사회적 교류를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꾸거나 아예 교류를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취약계층에 집중해서 보면 각 집단의 특성에 따라 폭염으로 인한 어려움의 성격이 달랐고, 생활양식 변화 차이가 컸다. 예를 들어 노인은 가사노동과 식사에, 다자녀 가구 또는 반려동물 가구는 돌봄에 드는 신체적·경제적 부담이 배가 됐다.
온열질환 경험률은 주거취약층이 25.0%로 전체(12.8%)의 2배에 달했다. 수면의 질이 저하됐다는 응답도 1인가구(29.0%)와 실외노동자(28.3%)의 응답률이 높았다. 또한 부모와의 교류가 악화됐다는 응답은 전체 조사에서는 6.6%였으나 저소득가구(17.2%)와 노인(16.7%)가구에서는 응답률이 2.5~3배 높아졌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폭염 취약계층은 온열질환 예방과 긴급 구호도 필요하지만 세부 집단별로 특별히 취약한 생활문제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특히 "폭염 취약계층의 범위를 기존의 신체적·경제적 요인을 넘어 영유아 가구, 음식배달 라이더, 1인가구 등 사회적·환경적 요인으로 확대해야 위험에 노출될 시민이 쉽게 포함될 수 있다"며 "취약계층별로 생활문제에 세밀하게 대응하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면 생활을 유지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정책들이 제안됐다.
영유아와 반려동물 가구는 냉방 전기료 지원, 시원한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노키즈·펫 구역에 대한 인식 전환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온열질환을 예방하려면 입주민의 협조가 중요하며, 배달라이더는 교통사고 위험과 온열질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보장하는 안전배달료 제도 등이 도입될 수 있다.
서울시민 "개인과 지자체도 폭염 대응 주체"
서울시민들은 폭염을 중대한 재해로 인식하고 있다. 폭염이 시민의 생활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각각 5.40점, 5.26점으로 한파, 미세먼지 등 주요한 자연·사회적 재해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폭염 대책은 어려운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선별적 대응이 맞다는 의견이 46.1%로 보편적 대응보다 많았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는 노인(36.1%), 영유아(18.9%), 만성질환자(15.3%) 순이었다.
서울시민이 생각하는 폭염대응의 주된 책임 소재는 중앙정부(45.6%), 개인(26.0%), 서울시(16.9%), 자치구(7.0%), 지역사회(3.5%) 순이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시민참여 또한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원은 "서울시민은 폭염대응을 정부 주도의 사회적 약자 보호로 바라보면서도 시민참여 등 사회적 연대로 인식이 확장 중인 과도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폭염대책의 목적을 긴급구호에서 더 나아가 사회 변화 대응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폭염은 일상생활 전반의 변화를 불러오고, 만성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특히 이러한 사회정책은 행정당국의 강력한 개입보다는 민관협력이나 시민참여로 실현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프랑스의 작업거부권, 미국 뉴욕의 공동체 재난계획처럼 사회 구성원의 공감과 인식 변화, 자원과 책임 분담, 상호협력과 지지가 이뤄질 때 폭염에 대응하는 도시회복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