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저소득층 대상 각종 정책자금지원과 공공주택 매입 등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양 회장은 감정평가 업무가 더욱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길수 감정평가협회장 [사진=감정평가협회 제공]
◇ 반백 년 맞는 감정평가업… 공적 책무·새 시장 개척 숙제
24일 만난 양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크게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적 책무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다.감정평가 업무는 지난 1972년 '국토이용관리법'(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내년은 딱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역사적 순간을 앞둔 양 회장은 취임 후 첫 번째 행보로 한국부동산원과의 상생 협력 업무협약을 선택했다. 그동안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고 국민을 위한 동반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앞서 두 기관은 공시가격 산정 등 업무영역과 부동산원의 전 사명인 '한국감정원'의 당위성 여부 등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바 있다.
뜻밖의 빅딜이 성사된 배경을 묻자 양 회장은 "지난 4월 7일이었다. 혼자 동대구역에 내려 부동산원으로 갔는데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환대를 해주셨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날 양 기관이 업역으로 다투는 모습은 국민께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서로의 이익보다는 국가적 문제 앞에서 협력하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협회원들도 이번 업무협약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양 회장은 "선거 때부터 부동산원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고, 62% 득표율로 당선됐다. 회원들도 그동안의 갈등에 피로감이 쌓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현재 주기적으로 부동산원과 협회 임원진이 회의하고 필요한 업무를 공유하는 중"이라며 "특히 부동산시장 안정과 질서유지라는 목표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
◇ 62만건 빅데이터로 업무 고도화·공공성 확대 노린다
이와 함께 그는 프롭테크를 활용한 감정평가서비스 고도화 및 공적 역할 확대 계획도 제시했다.양 회장은 "전국 4200명의 감정평가사가 한 해에 62만건에 달하는 감정평가 빅데이터를 생산한다”며 “현재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동가치산정모형(AVM)’을 개발 중이다. AVM 결과를 전문가인 감정평가사가 재검증하고 전문적인 판단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감정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에도 AVM을 활용할 생각”이라며 “아직 기준점을 정하지 못했으나, 일정 금액 이하의 주택에 대한 감정평가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저소득층의 복지와 정책자금에 필요한 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산업·무형·신흥 산업으로 물꼬
개척해야 할 업역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무형 지식재산, 토지에 대한 보상수탁업무, 리츠(REITs), 사업 타당성조사 등이다.지금도 저작권과 산업재산권, 어업권, 자동차·건설기계·선박·항공기 등 산업자산, 유가증권 등을 평가하고 있지만, 많은 일감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양 회장은 "특히 보상수탁업무의 경우 감정평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토부에 감정평가사도 보상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업역 조정을 요청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현재 회계법인 또는 컨설팅업체가 주로 수행하는 부동산개발사업 등의 사업성 평가도 전문적인 감정평가사가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주식처럼 부동산의 지분에 투자해서 수익을 보는 신흥 산업인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도 새 먹거리다. 현재로선 리츠 대상 물건에 대한 정기 평가가 의무화돼 있지 않아 공신력 있는 가치를 알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리츠 투자자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려해 투자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책정해서 투자 리스크를 줄여야 산업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며 “외국의 경우 정기적으로 감정평가를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기대이익까지 반영돼 거래되는 부동산의 특성상 정확한 감정평가 없이 당시 시세만 믿고 투자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가치 하락으로 인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이해관계자로부터 독립한 감정평가 이뤄져야
그는 한층 더 공정하고 정확한 가치평가를 위한 제도 개선도 건의했다. 현행법상 토지보상 과정에서 시행사와 토지주가 추천한 두 감정평가법인의 결과물로 보상금을 책정하는데, 중립 주체인 시·도지사 추천이 의무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양 회장은 “시·도지사 추천을 강행규정으로 바꿔서 가장 중립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또 감정평가법인이 아니라 협회에 추천을 의뢰하는 방법도 있다. 일부 공기업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이해관계인과 감정평가사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평가 결과물도 협회를 통해서 주고받게 해 독립성을 높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처럼 부동산 버블 경고가 있을 땐 감정평가 업무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라며 “본래 가치보다 고평가된 평가로 대출이 이뤄졌다가 나중에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는 등 금융권 부실화 문제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사 업무의 중요성과 역할을 감정평가사뿐 아니라 국민께서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대담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