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진국형 붕괴 참사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2021-06-1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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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이사장]


지난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맏아들 생일상을 차려놓고 자신이 운영하던 국밥집으로 일하러 가던 어머니, 재택수업으로 볼 수 없었던 친구를 만난 뒤 귀가하던 고등학생, 아버지와 함께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딸 등 사고 당일까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열심히 살아가던 무고한 소시민들이 창졸간(倉卒間)에 불의의 사고로 희생됐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참변에 말문이 막힌다.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후진적 참사가 일어났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쏟아낸 재발방지 대책은 어디로 갔고 그렇게 강조하고 다짐했던 안전의식은 무엇이었는지 참담하고 개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정확한 원인 규명으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원시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철거건물 붕괴 사고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해만 해도 지난 4월 4일에는 광주 동구 계림동 목조주택 리모델링 현장에서 내부 벽을 철거하던 중 지붕이 붕괴돼 건설노동자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하였고, 지난 4월 30일에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 10구역 주상복합건물 철거 과정에서 건물이 붕괴돼 건설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최근 6년간 건물 해체·붕괴 현장에서 무려 17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매년 2.83명씩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나 이미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특히 2019년 7월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붕괴 사고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도로를 덮쳐 승용차에 타고 있던 1명이 사망하고 3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번 사고의 판박이로 사전 경고였던 셈이다. 뼈아픈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불과 2년 만에 똑같은 사고를 반복한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도 철거업체가 공사기일 단축과 비용 등을 이유로 애초 구청에 제출한 작업계획서와 달리 지지대를 적게 설치하는 등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상부층부터 철거해야 했음에도 4~5층을 남겨둔 채로 1층부터 철거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돌격 해체’와 ‘저비용 철거’로 반복되는 붕괴 사고의 이면에 감춰진 돈과 맞바꾼 ‘안전’의 민낯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경찰에서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광주경찰청 수사부장이 본부장을 맡아 강력범죄수사대가 사고 관련 내용을 고강도로 수사하고,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재개발사업 전반적인 사항을 수사하고 있고, 국토교통부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원인을 조사 중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번 무고한 시민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봐도 우리 사회가 묵인해온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이자 안일함에 기댄 건설업체의 대충대충 시공, 다단계 불법 하도급과 감독기관의 무책임하고 부실한 관리·감독이 결합해 빚어낸 총체적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건축물관리법」제30조(건축물 해체의 허가)의 ‘해체공법의 적정성’ 여부와 ‘해체계획서’의 적합과 준수 여부에서부터 「건설기술 진흥법」제62조(건설공사의 안전관리) 및 제64조(건설공사의 안전관리조직), 제65조(건설공사의 안전교육) 등의 안전관리체계 전반의 적정성 여부와 「건축물관리법」 제31조(건축물 해체공사감리자의 지정 등)의 ‘해체공사감리’의 적정 여부 및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의 ‘다단계 불법 하도급’ 여부 등 현장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는 물론, 건물 철거 허가 과정부터 제도적 미비점에 이르기까지 이번만큼은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해체공사 전반에 대해 철저한 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악몽이 재발하는 참상은 다시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해체작업은 위층부터 아래층으로 같은 층에서는 수평으로 외부벽을 철거한 후 안벽, 슬래브, 작은 보, 큰보, 비내력벽, 내력벽, 기둥 등 강도가 약한 순, 즉 건축의 역순으로 해체하는 게 기본이다. 건축물 해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법은 ‘압쇄공법(Crusher Method)’인데, 굴착기 1대를 기준으로 굴착기 기사 1명, 안전관리자 1명, 신호수 2명, 살수원 1명 등 5명이 1조가 되어 굴착기에 집게와 같은 가위 모양의 ‘압쇄기(Crusher)’를 장착한 뒤 유압작동으로 압축과 휨 등의 힘을 가하여 콘크리트를 압쇄와 동시에 철근도 절단하는 해체공법으로 진동과 소음이 작은 장점이 있다.

이러한 압쇄공법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6층 이하 건물 철거에서 주로 사용하는 ‘성토 압쇄공법’으로 건축물의 하층부를 먼저 부순 뒤 잔해를 쌓아 그 성토 위에 굴착기가 올라가 고층부를 철거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직으로 건물을 뜯어내기 때문에 철거 속도는 빠르겠지만 붕괴 위험이 크다. 산처럼 쌓인 잔해가 남은 구조물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막기 위해 구조물에 철제 로프를 걸어 안쪽으로 붕괴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보통 7층 이상 건물을 철거할 때 사용하는 ‘톱다운 공법(Top down Method)’으로 굴착기를 건물 옥상으로 올린 다음 한 층씩 철거하며 내려오는 장비탑재 방식이다. 층마다 잭 서포트(Jack Support)라는 철 기둥 보강재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한 층씩 수평으로 건물을 뜯어내 붕괴 위험이 거의 없다. 6층 이하 건물에도 적용은 가능하지만 굴착기를 건물에 올리려면 대형장비인 크레인이 필요하고 비교적 소형굴착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도 길어져 비용이 많이 든다. 이번 광주 학동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사용한 공법은 비용이 적게 드는 대신 붕괴사고 위험이 큰 압쇄 공법을 채택했고, 해체 잔해와 성토 등으로 구조물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경우를 대비하여 철제 로프를 걸어 도로 쪽으로 붕괴를 막고 안쪽으로 붕괴를 유도하려는 핵심적인 안전조치마저도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건물이 무너지거나 잔해가 쏟아질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안전보호막 구실을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가림막만 쳐둔 채로 철거를 강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 바로 옆에서 철거 작업을 하면서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다. 특히 작업자들은 붕괴 직전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급하게 작업 현장을 빠져나왔으면서도 정작 차량 통행을 막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더욱이 공사장 바로 옆에 불특정 다수인들의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도 그대로 두고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이 두 달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제보를 해 감독관청인 광주 동구청으로 민원이 이첩됐으나, 동구청은 안전조치 명령 공문만 발송했을 뿐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번 재개발지구의 철거건물 붕괴 뒤에는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다단계 하도급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11일 광주경찰청과 동구 등에 따르면 학동 재개발정비4구역 조합은 2018년 9월 현대산업개발과 아파트 건설 시공계약을 맺었고, 현대산업개발은 2020년 9월 철거와 정비를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면허’와 ‘석면해체제업자 면허’를 취득한 철거업체인 ㈜한솔기업과 계약했다. 그런데 서울 소재 기업인 (주)한솔기업은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광주지역 중장비 업체인 백솔에 재하도급을 준 의혹을 사고 있다. 붕괴 직전 현장에서 작업했던 굴착기 기사 등 인부 4명은 모두 백솔 소속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는 종합건설업체가 전문공사를 위해 해당 전문건설업체에 재하도급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 외에는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재하도급의 문제점은 시공 능력이 떨어져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붕괴 사고 발생 다음 날 새벽 사무실에 들러 해체계획서 및 감리일지 등 관련 자료를 미리 챙겨간 듯한 정황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감리계약회사 대표를 소환 조사해 철거 해체계획서의 허가와 이행 등에 문제는 없었는지, 현장 감독을 제대로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다. 이번 건물붕괴 사고와 관련해 건물 해체를 관리·감독할 감리업체가 선정돼 있었지만 사고 당시 감리업체 관계자들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며, 사고 당일 철거업체 등이 안전관리규정을 지키면서 철거 작업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을 ‘감리일지’를 포함해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 문건을 확보하지 못한 듯하다. ‘17명 사상’ 의혹을 풀 ‘스모킹 건'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다. 감리업체는 철거계획서대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하고 안전점검까지 해야 한다. 감리일지는 감리업체가 자신이 공사 과정에서 관리·감독 의무를 다했는지 매일 기록하는 문서로서 관할 지자체에 보고·제출해야 할 의무도 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경찰과 국토교통부에 “사전 허가과정이 적법했는지, 건물 해체공사 주변의 안전조치는 제대로 취해졌는지, 작업 중 안전관리 규정·절차가 준수됐는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엄정한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의 죽음이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어 다시는 이 땅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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