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대구시 중구 남일동 중앙로역에서 지하철 차량이 불타는 사고가 났다. 뇌졸중 후유증을 겪던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불을 질렀고 승객 192명이 숨졌다.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고 철길 바깥쪽의 지붕까지 녹아내렸다. 2008년 12월 지자체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세웠다. 그보다 8개월 전인 4월 이 지역 출신의 시인 문인수의 시집 '배꼽'이 출간됐다. 거기엔 이런 시가 있다.
칸이 여럿 달린 긴 죽음이 지나갔다.
그쪽으로 가던 숱한 볼일들이 어디론가 급히 실려가버리고, 없다.
조금 전 분명 잘 만져졌던 마음,
악수하고 힘껏 껴안을 수 있는, 한대 쥐어박으며 오해를 풀 수 있는, 장난치며 간질일 수 있는 몸, 정신 차리고 보니 없다, 사방
엄청 큰 허공이다. 지금, 가장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얼굴,
꽃진 자리처럼
없다
없다는 사실! 이 시커먼 창고는 비명으로 꽉 찼다.
사람들은 줄지어 불탄 지하철 내부 대리석 기둥이며 벽면에, 기껏 그을음일 뿐인 화마(火魔) 위에 깜깜한 자필로 문질러 쓴다.
인생이란 미처, 그리고 마저 사랑하지 못한 내용일까.
"보고싶다"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쓴다.
흰 국화, 징검다리 더 길게 놓으며 간다.
없다 / 문인수
그 참극이 끔찍한 불길과 비명과 그을음의 이미지로 보도되고, 기사의 문장으로 들어앉을 때, 한 시인은 저토록 절절한 문자비(文字碑) 하나를 세웠다. 비문(碑文)은 간소하면서도 깊게 질문 하나로 패인다. "인생이란 미처, 우리가 마저 사랑하지 못한 내용일까." 대구지하철의 시커먼 풍경 앞에서 무릎 꺾인 영혼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
▶ 소월과 미당 이후, 약자(弱者)의 서정시가 피었다
2021년 6월 7일은 평범한 날처럼 보였다. 날이 더웠고, 전염병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한 시인의 죽음이 전해지면서, 적어도 내게는 평범한 날이 될 수 없었다. 소월(素月)과 미당(未堂)을 지나, 21세기를 맞으며 퇴색하는 듯했던 한국의 시(詩)는 소박한 듯하지만 비범한 어느 서정시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시대를 위무해온 절정의 언어가 눈을 감은 날이었다. 시인 문인수(이날 오전 12시 35분 지병으로 타계. 향년 76세)!
소셜네트워크에서 시인들이 전하는 부음을 듣고 아침 출근길이 허둥거리는 마음이 됐다. 책꽂이 여기저기에 꽂힌 그의 시집을 찾아서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문인수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으나 문단(文壇)에 드는 것은 엄두를 못 내다가 1985년 불혹의 늦깎이로 등단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20년 동안 스무 개의 직종을 옮겨다니며 불안한 취업과 고통스런 실업의 날들을 견뎠다. 제대로 직장생활을 해본 것은 1992년에서 1998년까지 6년간 영남일보에서 기자 일을 할 때뿐이었다.
1986년 첫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를 낸다. 그의 시가 제대로 주목받은 것은 2000년 이후였다. '홰치는 산'(2004), '쉬'(2006년), '배꼽'(2008년), '적막 소리'(2012)에서 시단(詩壇)과 독자들은 21세기 시의 중대한 성취를 눈 비비고 보기 시작했다. 동료 시인들은 그를 일컬어 '시마(詩魔)에 들린 시인'이라고 경탄하기도 했다. 문인수는 높은 격(格)에 이른 시들을 계속해서 쏟아내 '달북'(2014, 시조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2015) 등 모두 11권의 시집을 냈고,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목월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시에 대한 주변의 평가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등장한 놀라움 같은 것이 묻어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 노래를 익혀, 어느새 득음의 경지를 열어젖힌 그의 내공은 그동안의 각고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그의 북질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어 마침내 마음을 쓰다듬으니, 누더기를 깁느라 자신도 누더기가 되어본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너덜너덜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김명인 시인)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몸 위의 현(絃)은 갈수록 팽팽하고 손놀림은 더욱 정교하여 그는 이제 한국 시단의 중심이다. 도대체 늙지 않는 그 노래의 비법이 무언지 궁금하다."(이종암 시인)
문인수는 자신의 시집 '배꼽'을 엮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절경(絶景)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 사람의 반은 그늘인 것 같다. 말려야 하리. 연민의 저 어둡고 습한 바닥. 다시 잘 살펴보면 실은 전부 무엇이냐. 내가 엎질러놓은 경치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 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시인 문인수는 마흔 두 살 중증장애인의 '젊은 초상집' 풍경을, 눈시린 외계어 두 마디로 노출시킨다. 죽은 라정식의 상가에 앉은, 살아있는 장애인 이정은이 자원봉사자에게 건넨 말.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밥알이 튀고 국물건더기가 사방에 흩어지면서 했을 저 말. 저보다 간절한 시의 몸체가 어디 있는가.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 (문인수) 중에서
어느 신문에서 노인요양원에 대한 심층취재 기사를 냈는데, 치매 걸린 70대 할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녀의 기저귀를 남자 요양보호사가 갈아주는 바람에 수치심을 느껴 요양원을 나오게 된 사연이다. 노인을 보살피는 업체의 무신경을 비판하는 얘기였는데, 그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기품을 임종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문인수는 굴욕의 몸을 안아주고 있는 어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을 해피엔딩으로 반전시켜준다. 오래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렇게 했듯, 아버지의 오줌을 뉘어주는 아들.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 부끄러움을 걱정하는 아들 사이에서, 가벼운 몸이 쪼를쪼를 뿜어내는 몇 방울 오줌. 그걸 돋우기 위해, 오래전에 들었던 그 말, '쉬'를 자신도 모르게 흘려 내는 아들. 그 '쉬'의 바람소리를 따라 오줌보를 조금 더 풀어보는 아버지. 이 '쉬' 말고 우주 모두는 조용하라는 그 '쉬'.
포항 공동어시장 구판장 비닐 좌판 위에 이제 막 죽은 문어 두 마리가 잘 펴져있다 而而/雨雨, 길게 빠져나가는 슬픔은 이제 뉘 몫인지.//한 마리. 아직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놈 제 몸이 현재시각 무엇인지 급히, 그러나 참 느리게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만져본다.(......)
'앞과 뒤'(문인수) 중에서
막 죽은 문어 두 마리다. 축 처진 형상 而而 거품을 품는 雨雨.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 다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것을 시인은 숨을 멈추고 들여다본다. 꿈틀거리는 것, 제 몸에 대한 내무검사 같은 것이다.
'제 몸이 현재시각 무엇인지 급히, 그러나 참 느리게'
이 문장에 담긴 생사의 경계와 긴박한 생의 최종호출. 그게 끝나면 이제 건조과정이 시작되리라. 건조과정, 이 건조한 말이 이토록 마음을 사무치게 한다. 내 가슴속에 말라가는 당신의 기억까지, 마지막 습기를 내주는 문어 한 마리의 희미한 꿈틀거림.
그 집 할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었다./할아버지, 점심 때 집에 왔으나 할머니가 아직 오지 않아/대강 챙겨 자시고 다시 부지런히/경운기 몰고 밭으로 나갔다.
할머니, 아랫마을 갔다가 부랴부랴 집에 와 보니 에고, 이 양반/맹물에 밥 말아 그냥/밥 떠 넣고 장 떠 넣고 한 눈치. 할머니 못내 속이 상해서/쯧, 쯧, 평소처럼 일 거들 요량으로 한참 걸어 밭으로 나갔다.
할머니, 와락 달려들어 영감! 영감님을 얼싸안아 일으켰으나/119 구급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숨을 거두어 묻은 흙 묻은 손.
"오늘 아침엔 경운기 시동이 참 잘 걸리네요." "그래, 기분이 좋구만."/별다른 뜻이 없어도 오래 아프게 된 이 말/송사에 답사. 상가엔 꼭 상복을 입은 이별장면, 별사가 따로 있다.
무쇠팔 경운기 모는 소리도/먼 길 소실점처럼 이랴, 이랴…… 멀어져간다.
경운기 소리 / 문인수
마지막 반전으로 아리는 마음을 더욱 키운다. 아침에 노부부가 나눈 대화이다. 경운기 시동이 참 잘 걸린다고 할머니가 말해줬더니 "그래, 기분이 좋구만." 했던 그 말.
이제 경운기만 바라보면 그 말이 생각나고, 영감님이 눈물로 터져나올 판이 됐다. 그놈의 경운기가 영감님을 보내려고 그토록 시동이 잘 걸렸던가. 그 '소리'가 새삼 원망스럽다. 아니, 영감님이 세상 하직할 걸 부지불식간에 예감하면서 나더러 안심하라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 했던가. 그 소리 좋던 경운기를 소처럼 이랴 이랴 몰고 밭고랑 누비느라 저승 흙 파는 것인 줄도 몰랐던가.
시인은 아마도 시골의 어느 상가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할머니의 곡소리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상복을 입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의 할아버지 마지막 말씀을 되뇌며 눈물 쏟아내는 어수선한 별사를 시의 행간 속으로 쟁여넣었을 것이다. 사는 일, 혹은 그 뒤의 일. 이 일 말고 또 뭐가 있는가. 서울서는 들을 수도 없는 경운기 소리가, 한번에 드르륵 시동 걸린 그 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라고 북채를 들고 달을 두드린 시, '달북'을 쓴 뒤 스스로를 달북이라 자호(自號)했던 시인 문인수.
그는 전란(戰亂) 이후 황무지에서 번성한 자본주의로 직진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온 세상풍경 인간풍경들을 유정하면서도 번득이는 시선으로 낚아 올렸다. 약자들과 희생자들, 그저 버려진 듯한 익숙한 것들, 그리고 묵묵히 삶의 종착에 이른 사람들이 드러낸 수식없는 날것이 그의 시에 올라올 때는 시대의 내부를 어루만지는 듯한 위로가 생겨났다.
이 땅의 잃어버린 시간의 여운과 쌓여있는 삶의 얼굴을 시행(詩行) 속에 켜켜이 드러낸 시인.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얼마나 놀랍고 빛나는 자리인지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감수성이 번번이 눈밝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견자(見者).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는 한 컷 한 컷의 진면목. 익숙함을 자주 전율케 하는 시편들의 놀라운 출처(出處)를 우린 이날 잃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 시인(이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