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담은 지난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 처음과 두 번째로 갖는 외국과의 대면 정상회담이었다. 그 대상이 동북아의 일본과 한국이었고, 두 회담의 핵심 의제는 대만을 포함한 중국 문제였던 것이다. 여기에 북한 핵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패권 경쟁을 벌일 때 그 중심 지역과 이슈가 주로 중동과 유럽이었던 사실과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과 중국, 여기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과 대만 등 동북아의 모든 국가가 플레이어로 총 출전해 치열한 경쟁과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막전막후에서 전개될 치열한 외교와 협상, 그리고 때로 있을지도 모를 충돌의 모습들은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동북아 대결 구도를 단순화한다면 미국과 한국·일본·대만이 한 진영을 이루고, 중국과 북한이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 굳이 러시아를 포함한다면 중국·북한의 우호세력으로 분류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 쪽에 일방적으로 밀착하는 움직임에 지속적인 견제구를 날리면서 북한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숙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 문제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미국과 남북관계 개선에 목을 매고 있다시피 한 한국 정부에 북한 카드는 상당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북한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 어느 정도 고분고분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협상과 결과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서는 미·북 관계의 획기적 전환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미·일관계는 지난 4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대로 굳건하기 그지없다. 일본은 미국의 반중(反中) 동맹의 가장 확고한 기둥임이 거듭 확인됐다. 양국 정상 공동성명에서 1969년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문제가 언급됐고, 중국이 미·일동맹의 제1 타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미국은 호주, 인도와 함께 쿼드(Quad)의 일원인 일본에 대량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약속해 ‘백신 동맹’을 다지기도 했다.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한·미 정상회담과 비교해 보면, 현재의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온도 차를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한·미 공동성명은 양국 동맹의 역사성과 현재, 그리고 미래 비전까지 언급하면서 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과학기술, 의료 분야까지 두루 다루면서 동맹의 폭과 깊이를 한 차원 더 성숙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미·일 공동성명과 달리 한·미동맹이 겨냥하는 타깃으로 ‘중국’이라는 국명을 명시하지 못한 사실에서 드러나듯,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일본보다 한결 느슨하다는 점이 거듭 확인된 것이다.
일본은 얼마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때만 해도 ‘정상국가’로의 복귀 열기가 만만치 않았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패전의 멍에를 쓴 채 ‘군대’를 보유할 수 없고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라는 사실(그것이 아무리 형식적 주장일지라도)이 정상이냐는 불만 여론이 팽배했고, 아베 총리가 이를 선도했다. 평화헌법 개정 추진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일본이 상징적으로나마 전후 패전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 북한과의 과거 역사문제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과 함께 중국, 러시아와도 과거사에서 기인하는 영토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들과의 관계를 한층 더 심화시켜야 하며, 실제로 일본이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사실이다. 미·일동맹의 토대 위에서도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려 했고, 북한과도 어떻게든 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보려 했으며, 한국과도 위안부 문제 등을 최종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시도들은 더 이상 진전시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의 악화와 올림픽 개최의 난항 등으로 신경 쓸 여력도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지도력이 거의 바닥을 치면서 일각에서 가능성과는 별개로 아베 전 총리의 재등장론마저 제기될 지경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하락세를 보이는 와중에 미·중 대결의 격화는 일본 외교의 독자 영역을 더욱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일본이 미·일동맹을 국가안보의 주축으로 삼고 있더라도, 동북아 지역의 주요 국가로서 지역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미국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를 어느 정도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같은 지역 국가인 한국과의 적절한 협조가 필요하겠지만, 현재의 한·일관계에서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의사마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거리를 좁혀서 어떻게든 한·미·일 반중 단일노선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추진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성사시 논의 내용과 수준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문제는 일본과 북한 관계의 현실과 전망이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외교가에서는 한때 이런 통설이 나돌았다.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일·북관계는 지장을 받게 되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촉진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정권 때 납북 일본인 피해자에 관한 정보가 한국 쪽에서 흘러나와 일본 여론이 격화돼 북한과의 관계 진전이 무산됐으며, 반대로 김대중 정부 때는 북한을 설득하며 일·북 정상회담을 독려했다는 사실 등이 이런 통설을 뒷받침했다. 한국의 진보정권은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북관계도 잘되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통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효력을 잃어버렸다.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달은 데다, 남북관계까지 악화돼 한국이 일·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현재의 일·북관계는 빙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가 좋다 나쁘다고 할 여지도 없이, 그냥 아무 움직임 없이 얼어붙어 있는 형국이다. 일본 외무성은 2018년 7월 남북한을 함께 다루던 북동아시아과를 나누어 북한과(북동아시아2과)를 분리시켰다. 외무성은 “북한 업무가 많다”고 설명했지만, 시기적으로 제1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직후인 데다가 아베 총리가 "이제는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해야 할 때"라면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의욕을 보이던 때였던 만큼 일·북 간에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이후 일본과 북한의 물밑 접촉에 대한 보도가 자주 흘러나왔지만, 지금은 관련 뉴스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하기만 하다. 일본의 북한 여론도 싸늘하다. 일본인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는 납치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북한이 일본 열도 쪽으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때면 경보시스템(J-얼러트)이 작동하고 이것이 일본 국민들의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현지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일본과 북한 관계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는 여전히 ‘심장에 박힌 가시’이다. 이 문제의 해결이나 진전 없이는 양국 관계가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수십년째 변함이 없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정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도 2002년 관방 부(副)장관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수행해 평양에 갔을 때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 없이는 일·북관계 개선을 담은 ‘평양선언’에 서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이후 ‘납치의 아베’로 불린 그는 4년 후인 2006년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한·미 양국보다 더 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 미·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일본은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안이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스가 총리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강조했다.
북한으로서도 일본의 경제지원은 언제라도 절박한 일이지만 당장 양국 관계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4월 북한이 뜬금없이 도쿄 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것도 복잡한 계산이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한반도에는 3개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한반도를 동심원으로 남북의 시계, 동북아의 시계, 그리고 글로벌 시계이다. 이 세 개의 시곗바늘은 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남북의 시계에만 몰입하다 보면 동북아와 세계적 차원의 급변하는 정세를 놓치고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세 개의 시계를 정확히 읽어내 우리의 진로를 설정하고 대처하려면 더욱 치밀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필수적이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