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모처럼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제외교적 역할에 대해 대놓고 칭찬을 했다. 정부가 향후 어떤 당근(지원책)을 내놓을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총수의 오찬 회동에서 “지난번 방미 순방 때 우리 4대 그룹이 함께해주신 덕분에 정말 한·미 정상회담 성과가 참 좋았다”라고 말한 것과 관련, 재계 관계자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찬 회동은 시작부터 화기애애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과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기남 부회장은 오찬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과 환담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 방미 일정의 ‘하이라이트’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4대 그룹을) 지목해 소개한 일을 꼽자, 참석자들은 다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앞서 4대 그룹은 지난달 문 대통령의 방미 기간 44조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 대통령이 최태원 SK 회장에게도 “일정 전체를 함께해 아주 큰 힘이 됐다”고 감사를 표하자, 최 회장은 “양국 경제 관계가 더 활발해지도록 살피겠다”며 협력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방미 덕분에 미국과 사업이 더 잘될 것 같다. 기회를 더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껏 상기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시작되자, 4대 그룹 총수들은 본격적으로 최근 기업 경영과 향후 계획에 대해 입을 열었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의견도 이날 테이블 위에 올랐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 회장이 “경제 5단체장이 건의한 것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언급한 '경제 5단체장 건의'는 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지난달 청와대에 제출한 이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뜻한다. 에둘러 이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을 재차 건의한 셈이다.
이와 관련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을 보탰다. 또 다른 참석자는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시대에 앞으로 2∼3년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의견을 경청한 뒤 “기업·경제계의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사면론에 힘을 받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번 회동 대상인 모그룹 고위 임원은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성공에 4대 그룹의 역할을 거듭 높이 평가했다”며 “그런 연장선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 가장 바라는 선물을 주지 않겠나”라며 조심스럽게 사면에 대해 긍정론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오찬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사면 건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특정하지 않았다”며 “앞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 때 국민 공감대 생각해 의견 들어 판단하겠다고 한 것처럼 두루두루 의견을 듣고 경청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날 회동은 그동안 재벌 개혁을 외치던 정부가 친기업적인 입장으로 선회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이런 자리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이 공식 건의한 이재용 사면 요구를 계속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시민사회단체는 여전히 이 부회장의 사면을 반대하고 있다. 실제 참여연대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가석방 논의가 경제·사법 정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둘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넷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첫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첫째) 등 4대 그룹 대표 간담회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2021.6.2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