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서인국은 대체 불가한 천공 기술자 핀돌이 역을 맡았다. 까칠하고 저밖에 모르는 남자지만 정유 회사 후계자 건우(이수혁 분)이 세운 작전에 뛰어들며 동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인물이다. 그간 드라마를 통해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주었던 서인국은 핀돌이라는 인물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서인국의 일문일답이다
'노브레싱' 이후 8년 만에 영화 복귀다
평소 유하 감독님의 팬이었나보다
- 그렇다. 전작들도 모두 보았다.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파이프라인'은 그간 감독님이 선보이지 않은 분야이지 않나. 그 안에 오합지졸 인물들이 벌이는 행동들이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각양각색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하더라.
대본을 읽었을 때의 '파이프라인'과 영상으로 구현된 '파이프라인'은 어땠나?
- 오랜 기다림 끝에 '파이프라인'이 개봉하게 됐다. 2019년 촬영해 여러 사정 끝에 2년 만에 개봉하게 된 거다. 당시 땅굴에서 고생하며 찍었던 것이 영화를 보니 뭉클하게 느껴지더라. 땅굴이다 보니 촬영도 어렵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도 그런 모습이 연기 이상으로 영화에 잘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역할들이 위기를 겪고 극복했을 때의 통쾌함이 잘 느껴졌다.
영화 '파이프라인'의 주인공으로서 대본을 읽고 어떤 점을 이끌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나?
- 끌고 가기보다는 역할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위기를 겪었을 때의 감정 표현 같은 것들 말이다.
서인국이 해석한 핀돌이는 어떤 모습인가?
- '막장'까지 몰린 인물이고 땅굴에서도 일을 척척 해내야 하니 날렵한 모습보다는 체격이 좋은 편이 낫겠다고 여겼다. 또 상황 판단이나 말하는 것도 역할과 밀접하다고 여겨서 제 모습을 잘 버무려서 핀돌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핀돌이는 까칠한 성격으로 때때로 예의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자만심에 도취되고 '도유' 행위 자체를 그저 돈 버는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역할 자체에 초점을 맞췄고 인물을 구축하며 각 인물과 만났을 때 상대적인 모습도 염두에 뒀다.
방금 이야기한 대로 핀돌이는 입도 걸고 예의 없는 캐릭터다. 자칫하면 밉상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데
- 대사 중에 핀돌이의 성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도유꾼들과의 첫 만남이다. 만나자마자 '너희는 대체 가능, 나는 대체 불가능'이라고 한다. 자기애가 굉장히 강한 인물이다. '막장 생활에 위아래가 어디 있느냐'라는 주의다. 영화 안에서는 극적인 인물이고 땡땡하다고 할까? 인물의 감정이 입체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만의 방식으로 주변을 챙기는 모습이 매력적이더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욕도 거칠게 하고
- 그렇다. 하하하. 실은 영화를 찍으면서 너무 신랄하게 욕을 해서 후시 작업할 때 (욕설을) 조금 지웠다. 너무 몰입했던 모양이다.
땅굴 세트장은 어땠나. 거대한 규모던데
- 세트도 있었고 실제 땅굴도 있었다. 땅굴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도 찍어야 하니까. 그건 실제 땅굴에서 찍었다. 미술팀과 제작진이 무척 고생하셨다.
땅굴에서 촬영이 정말 어려웠다고 들었다
-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척 힘들었다. 땅굴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 가쁘더라. 그리고 장시간 같은 곳만 바라보는 일도 힘들었다. 누굴 하나 업고 일하는 것 같더라. 중간중간 바람도 많이 쐬고 동료들끼리 농담도 주고받으며 회복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부터 '주군의 태양' '고교처세왕' '38사기동대' '쇼핑왕루이'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까지 흥행 타율이 무척 높았다
- 그런 이야길 들을 때면 정말 기쁘다. 배우로서 궁극적 목표는 어떤 역할과도 겹쳐 보이지 않고, 어떤 인물을 맡아도 서인국이 보이지 않도록 연기하는 거다. 시청자와 관객들 개개인의 취향을 초월하는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로맨스부터 판타지 청춘물 등 그간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도 있나?
-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제 안에 없는 것들을 꺼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아니면 잔잔한 휴먼 드라마 장르에서 일상적인 인물도….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악역이라면 어떤 분위기의 악역이 좋을까? 좋아하는 악인 역할들이 있나?
- '조커'를 좋아한다. 역대 조커들은 연기력이 훌륭한 분들이 해내지 않았나. '다크 나이트' 히스 레저, '조커' 호아킨 피닉스. 매력적인 역할 같다. 사이코패스적인 악역보다는 순수 악의 모습도 해내고 싶다.
음반 작업에 관한 의지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 제게 음악은 매우 소중하다. 최근에는 드라마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OST도 작업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음악 작업실을 만들었다. 친한 작곡가 형들과 작업 중인데 욕심 같아서는 정규 음반을 만들고 싶다.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많이 할 계획이다.
서인국이 연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 (연기할 때) 스스로 만족이 안 된다면 힘들게 느껴지더라.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르게 연기 해야 해'하고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순수하게 역할이 가지는 방식을 고민한다. 그게 어떨 때는 만족스럽고 어떨 때는 '이게 최선인가' 고민하게 된다. 100개 중 99개는 불만족스러운데 그중 1개라도 만족스러우면 그걸 놓지 못하겠다. 좋은 의미로 그게 저를 미치게 하는 것 같다. 그 한 번이 모든 힘듦을 잊게 만든다. 힘들면서도 좋은 일. 그게 제가 연기를 지속할 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