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③ 통대통·테트리스·부엉이...초보자는 이해 못할 야영 은어들

202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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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대세 야영문화…용어는 어려워

제대로 즐기려면 그릴넷.타프.차콜 갖춰라?

넘쳐나는 외국어·외래어...용도 파악 안돼

독특한 공감대 형성…소통의 벽 너무 높아

장비·안전용어 사고와 직결...순화 필요

서울 노을캠핑장(야영장)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해졌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 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도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 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직장인 김미진씨는 '차박'이나 '야영' 등을 주제로 한 예능 방송을 보다가 자연스레 야영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코로나19 확산세에 해외여행길이 막히면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때, 다른 사람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며 오롯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참에 야영을 제대로 한 번 즐겨보리라 마음먹은 미진씨는 야영 동호회 성격을 띠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고, 야영 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초보자 미진씨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컸다. 외래어와 외국어로 무장한 관련 용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문 야영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는 더더욱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들 사이에 활발히 사용되는 은어야 몰라도 괜찮겠지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야영용품도 외국어와 외래어가 대부분이니 야영 한 번 하기 전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며  "야영이 보편적인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은 만큼 용품에 관한 용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바꿔 사용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야영 전성기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세에 바깥활동에 제약받고,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면서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차박과 야영이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주목받는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특성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수월하다 보니 감염 우려가 적고 비교적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코로나 우울을 겪는 사람들은 접촉을 피해 너도나도 떠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자 전국 유명 해변과 휴양림, 야영장 등이 밀폐된 공간을 피해 야외활동에 나섰고, 야영 관련 용품 구매율도 급증했다.
하지만 야영 관련 용어는 여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외국어와 외래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말 사용 전문가는 "야영이 코로나 시대 대세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은 만큼 용어 사용 역시 다수가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영 문화 1980년대부터 본격화··· 용어는 여전히 어려워 

흔히 '캠핑'으로 불리는 '야영'은 아직까지 선진국 여가 문화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야영 문화가 발달했고, 장비와 시설도 현대화됐다.

북미와 서유럽, 일본의 경우 1970년대부터 야영이 여가 활동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부터 야영 문화가 확산됐다.

그때만 해도 텐트와 버너, 은박 돗자리 하나면 야영 준비는 끝났지만, 시간이 흘러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야영 문화는 더 활발해졌다.

우리나라 야영 문화도 새롭게 바뀌었다. '장비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형 텐트를 비롯해 화로대, 야영 의자, 바람막이, 각종 전열기구, 야영용 식탁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물품이 됐다. 집 자체를 옮겨 놓는 수준의 야영용품을 사들이는 이도 상당수다. 장비 구입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와 야영을 주제로 한 예능 방송의 인기로 야영 문화는 더욱 보편화됐지만, 용어는 여전히 생경하기만 하다.

"캠핑(야영)을 제대로 즐기려면 텐트와 침낭은 기본이다. 그릴넷에 타프, 차콜, 행어, 쉘터 베스티블, 그라운시트···."

야영을 하려면 어떤 물품을 사야 할지 물었을 때, 이렇게 얘기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직접 보지 않고서는 어떤 용도로 활용되는지 좀처럼 파악할 수 없을 듯하다. 

그릴넷은 '석쇠', 타프는 '그늘막', 그라운드시트는 '방수천', 쉘터 베스티블은 '비바람 막이'로 쓸 수 있다. 차콜은 숯 또는 목탄 정도로 사용하면 된다. 그 외에 오토캠핑장은 자동차 야영장, 글램핑은 고급 야영으로 순화할 수 있다. 
 

중도야영장 야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야영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 초보자는 몰라요

알아듣지 못하는 야영 용어는 용품에 국한하지 않는다. ​흔히 '캠퍼'라 불리는 전문 야영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는 놀라울 정도다. 물론 이들 사이에 독특한 공감대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겠지만, 초보자를 비롯한 다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야영 문턱은 낮아졌지만, 소통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솔로모드 번캠이 있어 간단모드로 가고 싶지만 불장난도 해야 하고, 통대통 충전도 해야 한다. 추운 날씨에 대비, 바닥모드를 고려해 바닥공사를 철저히 하고, 여기에 부엉이와 리빙셀 등을 챙겨가 뽀대 있게 구축해 신공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고수답게 테트리스 내공을 발휘한다."

​얼마 전 야영에 관한 용어를 검색하다가 온라인상에서 찾은 문장이다. 캠퍼라고 불리는 야영인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무리가 없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사이의 소통망은 상당히 폐쇄적이다.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바꿔보면 대략 이렇다. 

"혼자 떠나는 야영은 계획 없이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갑작스레 가고 싶지만, 모닥불도 지펴야 하고, 가스 충전도 해야 한다. 추운 날씨에 대비해 잠자리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가스난로와 거실형 텐트 등을 챙겨가 멋지게 환경을 조성해 높은 수준을 갖췄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자동차에 야영용품을 빼곡히 채우는 능력을 발휘한다."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수의 눈높이에 맞춘 소통 문화를 정착한다면 대중화 시기는 더 앞당길 수 있을 듯하다. 

◆안전과 직결되는 야영 용어도 많아··· 순화 필요한 이유

우리말 전문가는 "야영이 코로나 시대 대세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은 만큼 모두가 쉽고 편하게 즐기기 위해선 용어 역시 다수가 알아듣기 수월하게 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야영 문화가 어느 순간 대세가 됐고, 외국 문화가 그대로 직수입된 면이 있다"며 "야영 용어는 전문가 사이에선 소통에 문제가 없지만 초심자의 경우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 많다"고 꼬집었다.

이건범 대표는 "문제는 야영 관련 용어들은 야영 방법과 환경뿐 아니라, 장비와 안전 관련 용어가 모두 섞여 있다는 점"이라며 "특히 장비나 안전 관련 용어는 사고와 직결될 위험이 큰 만큼 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누군가는 나서서 용어를 쉽게 바꿔야 하는데, 야영이 전문 영역인 만큼 일반인이나 한글 관련 전문가가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관련 동호회와 애호가 등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순화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고 유익하게 바꿔 많은 이의 이해도를 높이면, 많은 이가 즐기는 야영의 맛도 배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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