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저도 압니다, 떨어질 때 사야 된다는 거

2021-05-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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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증권부 윤지은 기자]

"떨어질 때 담아라."

증시 격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고개를 끄덕거렸을 흔한 가르침. 이 말대로라면 지금이야말로 투자 적기다. 한때 '십만전자'를 바라보던 삼성전자는 주당 가격이 7만원대(24일 종가 기준 7만9700원)로 떨어졌고, 8000만원대까지 치솟던 비트코인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이제는 "비트코인 반토막 나면 풀(Full) 매수 간다"는 호기로운 외침을 현실화할 때. 분명 머리로는 알겠는데, 매수버튼으로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무엇이 인간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가?

떨어지는 칼날을 기꺼이 잡을 '야수의 심장'을 갖기엔, 우리가 가진 자본이 지나치게 작고 귀엽다. 통장에 한 10억원쯤 있다면 까짓 1000만원 정도야 잃어도 그만이라며 50%의 확률에 베팅할 수 있겠지만, 1000만원도 없는 소시민 처지에서는(재작년 기준, 직장인 연평균 저축액은 852만8000원이라고 한다) 어쩌면 맨틀을 뚫고 내핵까지 떨어질지 모를 주식을 산다는 게 썩 쉽지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정하기 싫은 마태효과를 1차적으로 경험한다. 돈 있는 사람은 분명히 이 기회를 잡을 테니까. 언젠가 다시 오른다는 절반의 확신만 있다면 일단 매입하고 때를 기다릴 터다. 매입 후 한동안 더 하락한다 해도, 답답한 보합세가 계속된다 해도 별로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2030년쯤 칠만전자가 이십만전자로 화려하게 부활했을 때 팔아치워 이윤을 얻을 확률이 높다. 같은 시간 소시민은 "10년 전이 타이밍이었다", "기회야 또 오겠지", "토닥토닥" 같은 말들을 나눌 가능성이 크다.

삼전이 이십만전자가 되고 비트코인은 일억코인이 돼 있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미래가 왠지 4차원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쓰리다. 2021년의 나는 절반의 확신을 갖고도 칠만전자와 사천코인을 담을 심장이 (사실은 돈이) 없으니까.

10억원 자산가가 1000만원을 쓸 수 있으니, 어쩌면 100만원 정도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익부 빈익빈으로 귀결된다. 부자가 1000만원으로 7만전자 125주를, 소시민이 100만원으로 같은 종목 12주를 매입한다면 2030년 삼전이 주당 20만원으로 올랐을 때 부자는 1500만원(순수익 기준)을 손에 쥐고 소시민은 140만원을 겨우 번다. 

뭔가 벌긴 벌었는데, 어쩐지 격차는 더욱 벌어진 듯한 기묘한 감정이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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