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미국 워싱턴 D.C. 시내의 한 호텔에서 그레고리 추기경과 환담을 진행했다. 문 대통령과 그레고리 추기경은 모두 마스크를 벗은 채 소통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지난 10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추기경으로 임명됐으며, 지난 2019년 4월 이후 워싱턴 D.C. 대교구 대주교직을 수임하고 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전날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자는 내용의 기도를 봉헌한 바 있다.
먼저 문 대통령은 “여기 와서 주교님을 뵈니 꿈만 같다”며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 본명이 디모테오다. 한국으로서는 과거의 김대중 대통령님에 이어서 두 번째 가톨릭 신자”라고 소개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저 역시도 대통령을 이렇게 만나 뵙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리고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제가 서울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것”이라고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서울 방문했던 것은 2004년에 4년마다 개최가 되는 아시아 지역의 주교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면서 “당시 대전에서 개최가 됐는데, 우선 서울로 간 다음에 대전으로 이동했었는데 굉장히 인상 깊은 여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전체 국민의 12~13% 이런 정도일 것 같다”면서 “비율로 보면 가톨릭 국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식인층이 특히 가톨릭 신앙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우리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많이 이끌었다”고 했다.
이어 “한국 사회의 인권이라든지, 독재라든지 아픈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요즘에서는 또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 많은 역할들을 하고 계신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히 정신적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시고, 주도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가톨릭 신도들, 특히 신부님이나 주교님들이 이번에 제가 순방을 가게 되면 그레고리 주교님을 꼭 좀 만나 뵙고 좋은 말씀을 청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가 사회 정의라든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 왔다는 말씀이 저에게는 큰 자부심”이라며 “그리고 평화에서 앞서 왔다는 점도 굉장히 큰 자부심으로 느껴진다”고 화답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최근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표하며 “잇따르는 증오범죄와 인종 갈등 범죄에 한국 국민도 함께 슬퍼했다”면서 “증오방지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해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이 어려운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고, 갈등도 어려운 사람 사이에서 많이 생긴다”면서 그레고리 추기경이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고 1주기가 화합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끔찍한 폭력이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로마를 방문해 교황님을 뵈었는데, 한반도 통일을 축원하는 특별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면서 “여건이 되면 북한을 방문해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싱턴과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5만명의 교민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15년간 애틀랜타 대주교로 활동했는데 한국인들의 친절과 배려, 화합에 대한 열망을 잘 안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존중과 사랑을 받으면 보답하는 정신이 있다. 늘 함께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그레고리 추기경이 한국을 방문한 것을 언급, “한·미 양국 국민들의 돈독한 우정과 폭넓은 교류가 한·미 관계의 소중한 저력”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 그레고리 추기경이 한국을 다시 찾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그레고리 추기경에게 ‘손수레 십자가’를 선물했다. 구르마 십자가는 수많은 세월 동안 노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손수레를 해체, 이를 끌던 이들의 고통까지 바라보던 예수님의 마음을 십자가로 담아낸 작품이다. ‘구르마 십자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10개의 십자가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수십 년 전 동대문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며 일하던 나무 손수레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이 십자가로 만들었다”면서 “노동자의 땀이 밴 신성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성스러운 상징이라며 십자가에 입을 맞췄고, 문 대통령에게 한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복 기도를 했다고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