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칼럼] 대한민국 외교 '적당히 전략'을 버리자

2021-05-0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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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전 駐인도, 일본 대사}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이 구한말과 비슷한데, 그때는 우리가 대처를 잘 못하여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대처를 잘해야 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구한말에 우리가 외교를 좀 더 현명하게 했으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나라의 근본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외교를 조금 더 잘한다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니, 그래도 국제정세의 흐름을 좀 더 잘 읽고 줄을 잘 섰으면 나라를 말아먹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백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열강의 각축 속에서 다시 나라의 번영과 쇠락의 갈림길에서 무엇이 현명한 외교일지 시험 받고 있는데, 우리의 조상들보다 좀 낫게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외교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거듭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에 우왕좌왕하고, 잠시 잊고 있을 사이도 없이 찾아오는 이런저런 선거에 대처하느라고 바빠서 거시적 안목으로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금년 2월에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e is back)'고 선언하며 트럼프 시절의 미국우선, 일방주의에서 탈피하여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기약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우월적 지위를 내줄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어서 미·중 간의 경쟁과 대립이 격화될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민주주의 연대와 동맹 강화를 공언하고 있어서 미국과 중국의 중간 어디쯤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겠다는 전략은 먹히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 정부가 내내 심혈을 기울여 왔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와 김정은 북한 정권의 경직성으로 인해 앞이 꽉 막혀 있는 형편이다.

외교의 목표와 방향 설정

외교의 주체는 국가이고 궁극적 목표는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다. ‘국가의 존립과 번영’이다. 외교의 모든 전략과 전술은 이 궁극적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애당초 이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백가쟁명의 방법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우리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이 궁극적 목표에 대한 점검을 하고, 확신을 다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짜 나가면 된다.

북한·북핵 문제

민족통일, 우리민족끼리 등은 우리가 추구해야 될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그것이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철학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개념이 최상위가 될 수 있을지언정, 외교의 영역에서는 ‘국가의 존립과 번영’에 기여하는 한도 내에서 추구해야 될 하위 개념이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의 마음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해 왔지만 지금 북한과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 돼 있고, 북한의 핵 역량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북한을 설득하여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는 것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하는 방법도 강구해 봐야 한다.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북핵 폐기로 가는 길이 반드시 조용하거나 부드러워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표명하고 있는 대북 정책은 일단 ‘전략적 인내’나 제재 일변도의 강경책이 아니라 외교적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서 블링컨 국무장관과 회담한 정의용 외교부장관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으로 결정됐다면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강경책을 쓰지 않더라도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와 성의 있는 대화를 하게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이 북핵·북한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려면 우선 미국에 대한민국이 미국과 함께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미·중 경쟁에서의 대한민국의 선택

격화되고 있는 미·중 경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어느 쪽 편을 들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선 우리는 미국과 조약으로 묶여 있는 동맹이고, 미국 대신 중국을 선택할 수는 없다. 설사 중국을 선택하더라도 중국이 우리의 동맹이나 편이 돼 줄 가능성은 없다. 미국과 가까워지면 중국이 싫어하거나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우리가 미국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환심을 사려 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서 우리는 충분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 미국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을 높이면 이것이 대중국 관계에서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미루는 것은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5월 21일로 예정돼 있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이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확실한 입장을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쿼드, CPTPP 가입 빠를수록 좋아

쿼드는 지난 2월 개최된 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기후변화 대응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중국에 대한 공동대응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는 중국을 명시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인도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로써 우리가 쿼드에 가입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저해요인은 제거되었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가입하여 쿼드의 정체성 형성과정에도 참여, 중국에 대한 적대적 대응이 아닌 건설적 협력체로 발전해 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기 창립 단계에서의 참여 기회를 놓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 우리 정부도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고 미국·태국·인도네시아, 나아가서는 중국까지도 가입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왕에 가입한다면 영국과 함께 초기 가입국으로서 가입협상을 개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경제대국이 가입한 이후에는 가입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일관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일본이 우리의 이웃에 있는 것의 단점은 극소화하고 장점을 적극 살리는 실용적 외교가 필요하다. 양국관계는 양자관계에 그치지 않고 미국, 중국 등과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좋은 관계로 잘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여러 가지 문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꼬이고 꼬여온 것이기 때문에 쾌도난마식 해법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우선은 양국 사이의 깊은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양국 지도자와 외교 당국자들이 성의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외교의 다변화로 외교적 자산 늘려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기 쉬운 러시아와의 관계발전에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국제 정치·경제 무대에서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인도와의 관계 강화도 우리에게는 큰 외교적 자산이 될 것이다.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 등과의 관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정학적으로 4강외교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5년에 한 번씩 정권이 바뀌더라도 꾸준히 추진될 수 있는 외교 다변화를 위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

이준규 필자 주요 이력 

▶전 외교안보원 원장 ▶전 駐일본대사 ▶전 駐인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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