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법무부와 검찰이 서로를 향해 또다시 으르렁대고 있다. 이번엔 '피의사실 공표' 문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범계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와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체제인 검찰이 최근 피의사실 공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해 3월 18일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서 1시간가량 관련 보고를 받은 직후 "검·경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형사1부 수사팀은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등 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 중이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윤규근 총경이 연루된 버닝썬 의혹을 덮고자 김 전 차관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하며 문 대통령 등을 고발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보도 당일 "매우 엄중하고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피의사실 공표란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내용을 기소 전에 외부에 누설하는 것이다. 범죄 행위이기도 하다. 형사사법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3년 이하 징역이나 5년 이하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한다.
다만 사문화된 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피의사실공표는 1953년 형법 제정 때 만들어진 규정이다. 애초 형법 초안에는 없었으나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들어갔다. 그러나 최근 25년간 피의사실 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단 1건도 없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5년부터 2020년 9월까지 피의사실 공표죄 사건 586건 중 기소된 사례는 0건이었다. 처벌이 안 되다 보니 피의사실 공표가 망신 주기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수사 중인 의혹이나 혐의를 미리 언론에 흘려 법원 판결 전에 피의자에게 사실상 유죄 판단을 내린다는 지적도 있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 "현실과 이상을 잘 조화한 피의사실 공표죄 개선이 아주 중요하다"며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수사 과정 내밀성 등을 고려해 미래지향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면 좋겠다"고 방향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