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보청기를 빼고 일주일 동안 있어 봤어요. 진동밖에 들리지 않더라고요. 너무 불안했죠. 그 당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죠.”
지난해 장애 예술작가 3인 그룹전 ‘감각의 섬’에 전시장에서 만난 이은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소리 없는 경험 세계’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의 경험은 이 작가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으로 꽃피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31일부터 실감 콘텐츠를 통해 장애 학생의 문화향유·체험을 돕는 ‘상상누림터’ 4개소의 체험을 단계적으로 시작했다. 상상누림터는 경기도 화성오산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경상남도교육청 특수교육원, 광주시 광산구 광주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충청북도특수교육원에 조성됐다.
콘진원은 지난해 6월 국립특수교육원과의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상상누림터 조성 기획단계부터 각 특수교육원 및 특수교육지원센터와의 논의를 진행해왔다. 특수교육 교수, 교사 등 관련 분야 현장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의 20회 이상의 온·오프라인 자문을 거쳐 장애 학생에게 친화적인 공간과 콘텐츠를 수요자 중심으로 구성했다.
상상누림터 내부에는 총 29종 47편의 실감 콘텐츠가 도입됐다. 장애 학생의 실감 콘텐츠 적응성을 고려해 △저연령 학생을 위한 콘텐츠 난이도·속도 조절, 터치영역 확대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자막 삽입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사운드효과 삽입 △고배율 돋보기 도입 △체험시간 및 시각효과 조절 등의 맞춤형 개량을 세심히 진행했다.
특히, 휠체어를 탄 장애 학생이 몰입형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모션진동판’은 지금까지 없었던 시도다. 시뮬레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 학생들을 위해 휠체어 위에서도 음파진동을 통해 시뮬레이터에 실제로 탑승한 것과 같은 실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전문가 자문을 통해 새롭게 기획·제작됐다.
김영준 콘진원 원장은 “상상누림터는 코로나19로 관람·체험이 더욱 어려워졌을 장애 학생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올해는 사업 확대를 통해 더욱 많은 장애인 대상 실감 콘텐츠 향유 기회를 제공하면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장애예술과 관련된 법률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김예지 국회의원은 지난 29일 문화진흥 기본계획에 장애인의 문화 활동 접근권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문화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성별·종교·인종·세대·지역·정치적 견해·사회적 신분·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문화 활동에 참여해, 문화를 향유할 권리인 문화권을 가진다는 점을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현행법에 따른 문화진흥 기본계획에 장애인의 문화 활동 접근권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했다. 장애인의 문화권을 향상하고 문화정책 및 사업 전반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이 골자다.
김 의원은 “문화적 권리를 누리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장애인들 역시 문화에 대한 향유와 참여 욕구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설과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사회적으로 동등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돼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정책이 기본계획에 포함되면 장애인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고 짚었다.
현장과의 소통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난 25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핸드스피크 공연연습장’을 방문해 연습 현장을 참관하고 장애 예술인 단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핸드스피크’는 수어뮤지컬, 수어랩, 동영상들을 제작하고 공연하는 농인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이다.
예술인들의 어려움을 경청한 황 장관은 “여러분과 같은 훌륭한 장애 예술인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