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특유의 담화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3월 8일부터 시작한 한·미연합훈련이 막바지 단계였던 3월 15일 김여정 부부장은 "스스로 자신들도 바라지 않는 '붉은 선'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을 했다"고 한국을 비판하면서, 남측과의 대화창구 역할을 해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해체를 시사했다. 이틀 뒤인 3월 17일 대미외교의 실무책임자로 알려진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기를 감수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미국과 마주 앉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무엇을 할지를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일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굴해 말레이시아가 불법자금세탁 혐의로 체포했던 북한 국적의 문철명씨를 미국에 인도한 것에 반발해 말레이시아와 외교 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했다.
21일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던 북한은 25일에는 ‘신형전술유도탄’ 2발을 시험 발사했다. 고도 약 60㎞, 비행거리 약 450㎞의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던 우리 군을 비웃기라도 하듯 26일 북한은 탄두 중량을 2.5t으로 개량해 600㎞를 날아가 동해 수역에 설정된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하자, 지난 26일 리병철 비서는 핵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반입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리는 미국의 강도적 논리라고 반박했다.
신형전술유도탄은 지난 1월 당대회 후에 치러진 열병식에 처음 등장했던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의 개량형으로 보이는데,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 안에 포함할 뿐만 아니라 당대회에서 북한이 개발을 시사했던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게 되면 북한의 위협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3월 23일 당과 내각 간부들을 데리고 평양시 1만 가구 살림집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으며, 보통문 주변 강안지구에 조성할 800가구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했다.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5년간 5만 가구의 살림집 건설 방침이 결정된 데 이어 2월의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연내 1만 가구 건설이 목표로 제시되었다. 800가구 살림집은 이와는 별도로 당 중앙위원회가 직접 관리하면서 올해 안에 완공,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근로자들에게 김정은 총비서가 하사할 선물이다. 핵심 측근들을 동원해 대남, 대미, 군사 부문에서 총공세를 펴면서 김정은 총비서 자신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현하는 자애로운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 25일 오전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을 뿐이며, 26일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은 남·북·미 모두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재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군사와 경제,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그런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위대한 전략적 자산’인 나토(NATO), 호주, 일본,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안전과 번영의 초석’인 미·일동맹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시아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맹이지만,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미 2+2 종료 후의 기자회견에서 블링컨 국무장관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한·미·일 연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싸고는 한·미 혹은 한국과 미·일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동맹의 연계나 협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인식의 차이를 메우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협의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3월 18일 5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2+2)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이며, 한반도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한·미 간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 하에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가 포함되지 않았다.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은 언급했으나 북한의 유엔안보리 결의 이행과 관련해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해 3월 16일에 발표된 미·일 2+2 공동성명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전 및 번영’이라는 공통의 목표 실현을 위해 처음으로 중국을 명시하면서 ‘중국에 의한, 기존 질서에 합치하지 않는 행동’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센카쿠열도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확인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양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안보리 결의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인도·태평양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은 2016년 출판한 저서 <피벗: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미래>(아산정책연구원, 2020)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한·미관계와 미·일관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전략대화나 공동작전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캠벨은 한국은 북한 문제를 한국외교에서 분리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만의 정체성과 이익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와 전시작전통제권의 반환도 한·미 간의 군사협력을 약화시키고 위기 발생 시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면서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시 주한미군의 지위나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당사자인 한·미는 물론 북한이나 중국, 나아가 주일미군 기지 일부가 유엔군사령부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과도 무관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6·25전쟁 제70주년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겠다면서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보도내용을 보면, 올해 1월의 제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2016년과 달리 김일성과 김정일이 제시하고 정립한 통일방안이나 방침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것은 선대가 중시했던 ‘통일’보다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서의 ‘북한’의 독자적인 발전을 우선해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문제는 인도·태평양의 지역차원을 넘어 글로벌한 문제가 되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세계 7대 수출 강국,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만큼 당당한 나라’가 된 한국은 미·중 간에서 우리의 선택지를 넓히는 외교를 해야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현실 외교는 그렇지 못하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격화할수록 역내 국제질서는 불안정해질 것이지만, 두 중견국가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대미·대중 외교에서 자국의 독자적인 외교 공간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양국도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으며, 한·일이 연계하면 미·중 간의 협력을 촉진하고 대립을 완화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이 자국 중심의 이념지향 외교를 전개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협력은 희망에 근거한 대북정책으로는 일치점을 도출하기 어렵다. 다음 주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일 안보수장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어떻게 조율될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