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품귀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일본 이바라키현(茨城県)에서 들려온 화재 소식이 업계의 우려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대표 자동차 업체 주가도 추락했다.
2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반도체 대기업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의 주요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일부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화재가 발생한 공장에서의 생산 재개에는 최소 1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 반도체 공급 정상화까지는 3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반도체 생산에는 통산 2~3개월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시바타 히데토시(柴田英利) 르네사스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공장 화재로 칩(반도체) 공급에 막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일 일본 도쿄(東京) 북부 나카(那珂)시에 있는 르네사스 공장의 클린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화재 발생 약 5시간 30분 만에 진화됐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설비 11대, 제조장비의 약 2%가 불에 탔다. 또 웨이퍼에 미세 손상을 줄 수 있는 유독가스 확산도 진행돼 300mm 웨이퍼 생산이 중단됐다.
시바타 CEO는 이번 화재에 영향을 받은 생산량의 약 3분의 2가량이 자동차 칩이라며, 한 달 동안 생산이 중단될 경우 매출액이 약 170억 엔(약 1764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장 가동 재개에 최소 한 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며 이번 화재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하반기를 넘어 연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회사의 반도체 재고는 한 달 물량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화재가 르네사스의 나카 공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중 간 무역갈등, 수요 급증으로 나타난 전 세계 반도체 품귀 현상이 르네사스 공장의 이번 화재로 한층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이 난 르네사스 나카 공장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약 3개월간 가동이 중단돼 자동차 생산에 큰 타격을 줬었다. 당시 업계 내에선 나카 공장 가동 중단에 대해 ‘르네사스 쇼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카 공장은 일본 내 전체 6개 공장 중 유일하게 300mm 반도체 웨이퍼 생산 라인을 갖춘 곳이다.
신문에 따르면 르네사스의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분야 매출액은 세계 2위로, 약 2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도요타, 닛산 자동차 등이다.
신문은 지난 2월 미국 남부 텍사스를 강타한 이상 한파에 따른 대규모 정전으로 MCU 분야 세계 최고인 NXP와 3위인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의 공장의 운영이 중단됐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이상 한파로 MCU 분야 세계 1위와 3위 공장이 멈춘 데 이어 세계 2위인 르네사스 공장까지 화재도 가동이 중단돼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할 거란 점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토추(伊藤忠) 연구소의 후카오 산시로(深尾三四) 선임연구원은 “이번 화재로 자동차 반도체 조달이 약 6개월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르네사스 공장 생산 재개에 1개월, 공급 정상화에 3개월이 소요될 경우 최대 6개월까지 반도체 품귀 현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혼다자동차 관계자는 “현재로선 영향력을 판단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생산 중단이 한 달을 넘어가며 재고가 줄어 차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4월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미나미카와 아키라(南川明) 수석 컨설팅 이사는 르네사스의 화재 타격이 수만 대에서 끝나지 않고, 더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현재 르네사스가 자사 공장이나 외부에서의 대체 생산을 검토하고 있지만, 300mm 웨이퍼 생산라인은 화재가 발생한 니카 공장이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27분 현재 일본 주식시장에서 자동차 종목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도요타는 전 거래일 대비 2.34% 떨어진 8442.0엔을, 혼다는 3.08% 추락한 3364.0엔에서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