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막노동, 배달대행···.
최근 만난 일부 여행사 사장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임시직이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어려운 가운데 그나마 일거리가 있어서 가족의 생계를 꾸릴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여행사 사장들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안도 없는 사람들은 자본금이 바닥을 드러내자 속속 업계를 떠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에 없는 혼란 속에서 누구를 탓하랴. 힘든 상황이지만 남은 여행사들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래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모두 코로나19 이후 대반전이 기대된다.
특히 K-방역과 한류 등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를 찾고자 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인 게스트들의 가고 싶은 목적지 상위 10개 도시 중 한 곳에 서울이 포함됐을 정도다. 글로벌 숙박예약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시점을 점찍을 수 없어 괴롭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현실화할 미래다. 현재 여행업계가 바라는 것은 그 시점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도록 하려는 정부의 노력이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방안이 있다. 최근 여행뿐만 아니라 항공, 호텔 등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백신여권’의 도입이다.
백신여권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해외 통용 디지털 증명서를 뜻한다. 접종을 증명하면, 일반인들의 국가 간 이동에서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자유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중국,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 등 이미 많은 국가에서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국경 간 인적 교류를 정상화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중국의 경우 이미 지난 15일 자국산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외국인에 대해 비자신청을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입국 후 14일간 지정된 시설에서 격리해야 하는 규정이 유지되지만, 코로나19 이후 초청장 등 비자발급의 벽을 크게 높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완화되는 셈이다. 스페인과 그리스도 여름휴가 성수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관련 논의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움직임은 없고, 예방 접종률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같이 변화될 수 있다”며 코로나19 백신여권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백신여권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건설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K-방역의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 업계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백신여권을 빨리 도입해 달라고 종용한다면, 그처럼 무지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백신 면역력 지속 여부 △백신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코로나19 백신 종류 △국가와 개인 간 빈부 격차로 인한 백신여권 보급 속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진보된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의료기술,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성공사례를 일궈냈다. 마찬가지로 백신여권으로 촉발된 코로나19 사태의 전환점에서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분명히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