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여행 활성화 열쇠 '백신 여권'... 시기상조에 차별 우려 목소리 나와

2021-03-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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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이어 중국도 백신 여권 도입 추진... 섣부른 도입 따른 부작용 우려

英 교수 "감염 예방 효과 등 여러 측면 데이터로 검증 필요" 지적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코로나19 검사소 안내판. [사진=AP·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하늘길이 봉쇄돼 지난 1년간 국제선 여객이 90% 넘게 급감한 가운데, 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백신 여권에 아시아 국가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백신 여권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한 사람에게 상대국이 격리나 이동제한 조치를 면제하는 것으로, 최근 중국도 백신 여권 도입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백신 여권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관광산업 비중이 큰 일부 유럽국가다. 코로나19로 아사(餓死) 직전에 놓인 관광산업에 백신 여권이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관광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슬란드는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자국민에게 백신 여권으로 불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를 발급했다. 아이슬란드 보건부는 해당 증명서를 소지한 자국민을 비롯해 외국인에게도 검역 조치를 면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도 백신 여권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전인대에서 기자회견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진=연합뉴스]

최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도 백신 여권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중국판 국제여행 건강증명 전자서류'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백신 여권을 검토 중이며 홍콩과 마카오에 우선 도입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동남아 일부 국가도 적극적이다. 베트남과 태국 정부도 백신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에게 입국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백신 여권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11일 '유럽 주요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 및 2021년 경제회복 전망' 보고서를 통해 "유럽 주요국에서 백신 여권 도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여행 재개에 소외되지 않도록 관련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백신 효과 확실하지 않은데···" 백신 여권에 우려 목소리 
전 세계적으로 백신 여권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런던 퀸메리대학의 임상역학자 딥티 구르다사니 박사는 미국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현재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효과는 불확실하고, 변종 바이러스와 무증상 감염에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며 백신 여권 도입 논의가 섣부르다고 평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백신 여권 도입에 부정적이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8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 허가된 백신의 접종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는 데다, 관련 데이터도 여전히 수집 중"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백신 여권을 상용화하기 위한 조건도 산 넘어 산이다. 크리스 다이 옥스퍼드대 교수는 "여행을 비롯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백신 여권은 필요하지만, 까다로운 기준을 갖춰야 한다. 기본적으로 백신의 감염, 전염 예방 효과와 면역 지속력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백신 여권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멜린다 밀스 옥스퍼드대 교수도 "데이터 보호를 비롯한 기술적 문제, 백신 여권에 대한 윤리적 문제 등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백신 여권의 국제적 표준을 만드는 작업부터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해리 세브란스 듀크대 의과대학 교수는 "백신 여권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현재 여권 시스템과 같이 모든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표준화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은 백신 여권 보급 촉구···과제는 산 넘어 산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남유럽 국가들은 올 여름에 백신 여권을 도입해 하루빨리 관광객을 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각국의 백신 접종률 편차가 커 실제 도입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미국 타임스는 "미국은 5월 말까지 모든 성인에게 충분한 백신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EU 회원국은 휴가 성수기가 한참 지난 9월은 돼야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백신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백신 여권을 둘러싼 윤리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WHO는 "백신 여권 발급은 특정한 이유로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하고, 현 체제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신 여권 소지자에게만 이동 제한과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완화하면 기저질환으로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한 이들이 차별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밀스 교수는 유로뉴스와의 통화에서 "EU는 9월까지 전체 성인 인구의 70%가 접종하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백신 여권이 도입되면) 나머지 30%가 국경에서 차별을 당할 위험이 있다. 또 백신 접종은 연령과 성별, 직업 같은 요인에 따라 달라지고, 임신부처럼 백신접종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 여권 도입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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