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신경세유표-44] 도 이름과 국도번호를 바꾸자

2021-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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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는 충청서도? 충청북도는 충청동도?

44번 국도, 444번 지방도??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길은 가까운 데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먼 데서 구한다. -공자
∙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길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노자
∙ 나는 다만 길을 가르킬 뿐이다.-석가모니
∙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보살피도다-구약성경 시편 1장 6절
∙ 세상에 이음동의어는 없다. '도로'의 道는 하늘의 길, 路는 사람의 길. '법률'의 法은 칼의 강제성, 律은 저울의 형평성. 나라에 률없는 법만 설치니 사람들은 도없는 로에서 헤매는구나.-강효백

◆충청남도는 충청서도? 충청북도는 충청동도?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쯤 남행하면 ‘충청남도’라고 쓰인 도로표지판이 반긴다. 거기서 좀 더 내려가면 ‘충청북도’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라, 분명 남쪽으로 줄곧 내려왔는데 ‘북도’라니? 한참을 더 남행하면 다시 ‘남도’였다가 대전을 남동쪽으로 휘감아 돌아 충청도 최남단에 들어서면, 또 다시 충북 옥천군과 영동군에 들어선다. 동서남북 방위 감각이 마구 헝클어진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충남은 ‘충청서도’로, 충북은 ‘충청동도’로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방위의 정확성을 중시했던 우리 선조들인데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는 걸까?

우리가 현재 부르는 도(道)의 이름은 조선시대 태종이 고려 시절 5도 양계를 혁파하여 당시 농경지 면적을 기준으로 전국을 8도로 재편한 것에서 비롯된다. 아시다시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함경도는 함흥과 경원 등 각 도에 소재한 두 중심도시 앞 글자에서 따왔다.

조선 왕조가 방향감각을 잃은 채 허우적거리며 망국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던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뒤 고종이 신변 위협을 느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을 가 있던 아관파천 시절이다. 점령지를 잘게 쪼개어 통치하려는 습성이 있는 제정 러시아의 입김 때문이었을까. 정권을 장악한 친러파는 8도 중 5도를 남·북도로 구분, 13도제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그렇게 창졸간에 획정된 도명이 일본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한편 광복 이후 인구의 도시 집중과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생활권과 행정권의 괴리현상이 심화되자 정·관·학계 일각에서는 현행 ‘시·도-시·군·구-읍·면·동’ 3단계 지방행정 체제를 ‘광역시-기초행정구역’ 2단계로 간소화하자는 개편안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개편한다고 행정중복이 사라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전국을 60∼70개의 광역시로 쪼개면 오히려 지자체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행정구역 개편의 실행에는 지자체간의 이권다툼과 지역이기주의, 전통에 대한 국민의 애착, 선거구 변화를 둘러싼 정쟁으로 변질될 우려 등 넘어서야 할 산이 첩첩이라 쉽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쉬운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우선, 도명이라도 현실에 맞게 바꾸길 제안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충청남북도처럼 방위마저 틀리게 이름 붙인 행정구역의 예를 아직 찾지 못했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지금의 충남에는 충주와 청주가 없고 경남에는 경주와 상주가 없다.

지방행정 구역은 삼국시대에서 신라·발해(남북국)시대,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개편·개명돼 왔다. 그런데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왕국이 아닌 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광역지방행정구역은 거의 변함이 없다. 오늘날 중앙정부 조직이 새 정부가 들어서는 5년마다 한 번꼴로 개편·개명된 것과 비교된다.

국토도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하는 세계 유일 분단국이라는 처지도 답답한 일인데 도명마저 남북으로 갈라놓은 경계는 분열과 대립의식을 알게 모르게 국민 가슴에 새겨 놓을 수 있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지역대립 구도가 연상되는 경상·전라·충청 등 낡은 도명에 대한 600여년 묵은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품에 현실에 기반하고 미래로 향하는 참신한 도의 이름을 선사하자.

◆44번 국도, 444번 지방도?? 

수(數)의 미신, 좋은 수와 나쁜 수, 합리주의 극치인 수에도, 미신이 따라다닌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일제가 우리에게 걸어놓은 4대 주술(①반격을 모르는 초식성 민족 ②단결을 모르는 분열성 민족 ③제 뇌로 생각할 수 없는 무뇌 민족 ④법제를 도입할 뿐 독창 제정할 수 없는 열등 민족)에서 깨어나자. – 강효백

몇 년 전 이맘때 필자는 동해 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 손수 운전하며 속초를 향했다. 아직 서울양양고속도로(국도60호)가 개통되지 않은 시절이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 강 굽이를 돌고 산을 넘으면서 곡선을 그려내는 44번 국도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굴곡과 경사가 많아 운전에 신경이 곤두섰다. 문득 그 많은 국도번호에 하필이면 44번일까? 대형종합병원조차 4층도 F로 표시하는 등 우리나라 사람은 대개 4자를 싫어하는데.. 혹시 이 도로가 혹시 죽음의 도로라서 44번 국도라고 하지 않았을까?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속도를 내서 달렸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에 이르자 반갑게도 교차로가 나타났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아뿔싸! 지방도로 번호도 444번 4가 무려 3개다. ‘3단에서 2단으로 변속’ 과 같은 군대에서 설치한 운전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커브, 경사의 연속이다.

왜 양평-한계령-양양간 국도는 44번이고 홍천-인제간 지방도는 444번일까? 관계 당국에서 운전자들에게 운전에 각별하게 조심하라고 일부러 ‘4’를 붙인 것이겠지 좋게좋게 생각하며 목적지에 이르렀다.

허나 훗날 44번 국도번호 탄생의 곡절을 살펴보니 씁쓸했다.

1938년 4월 4일, 조선총독부가 조선도로령(조선총독부령15호)을 제정하여 국도, 지방도, 부도, 읍면도로 나누었다. 남북방향으로 된 노선은 홀수로 번호를 붙이고 동서 방향으로 된 노선은 짝수로 번호를 붙였다. 그때 지금의 44번 국도가 생긴 것이다. 조선도로령은 1945년에 일제가 패망하여 광복이 된 후에도 존속한다.

1961년 12월 27일, 박정희 군사정권은 조선도로령을 폐지하고 도로법(법률 제871호)을 새로 제정했다. 그러나 이름만 폐지이지, 조선도로령의 그대로 답습에 약간의 살을 붙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똑같이 파란 타원 속 흰 글씨로 ‘몇 번’ 또는‘ 몇 호선’이 붙는 국도와 고속도로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항만, 비행장, 관광지 등 우리 국토의 주요 지점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1877년(메이지10년) 도로교통법을 제정해 일본열도 남북(종간)은 홀수, 동서(횡간)는 짝수번호로 국도번호를 매겼다. 4자를 죽음의 저주로 여기는 일본은 자국의 국도엔 44번을 결번으로 제외하고 한국의 국도엔 44번을 붙였다.

그러다가 1963년에서야 마지못하듯 홋카이도의 동북 끝 쿠시로시에서 네무로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124.6km에 44번 국도번호를 부여했다. 특이하게도 쿠릴열도 분쟁이 지속 되고 있는 곳과 가장 가깝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우리는 국보 번호도 일제가 정해준 순대로, 국도번호도 일제가 정해준 순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를 새롭게 고치면 큰일이라도 나듯 해방된 지 75년이 넘도록 이를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조선’도 아니고 ‘종일 매국 군부독재 치하의 약소국가’도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경제지표에서 일본을 앞선 신흥강국이다. 이제 21세기 대한민국 국가의 도로 국도(國道)에 새로운 번호를 달자. 그리하여 세계 최고 선도국의 밝고 넓고 빠른 민주평화통일 대한민국 고속도로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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