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부담 커지는 SK이노, 자금 조달·투자 '빨간불'

2021-02-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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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당금 적립 미뤄왔지만 한계 직면

향후 민사소송 판결에도 악영향 전망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충당금이 반영되면 SK이노베이션의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이 계획했던 대규모 자금조달과 투자 계획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15일 "배터리 기술 영업비밀 침해 소송 결과가 다소 아쉽지만 지금 바로 배상금을 지급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며 "아직 소송 충당금을 어떻게 할지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조만간 관련 논의를 구체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4월부터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배터리사업부)을 상대로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관련 수입금지 소송 등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리스크를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는 통상적으로 대기업이 재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미리 배상금 규모를 예상해 충당금으로 설정하는 것과 큰 차이다. 충당금은 기업에서 앞으로 지출될 것이 확실한 비용을 미리 손실로 계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면 다시 수익으로 환입할 수 있다.

이 같은 자세는 지난해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증거보존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했다는 이유로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린 이후에도 유지돼 왔다. SK이노베이션은 최종 판결에서 관련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며 충당금을 적립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10일(현지시간) ITC가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기존 조기패소 판결을 최종 결정으로 확정하면서 SK이노베이션이 더 이상 관련 리스크를 인식하는 일을 미룰 수 없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이 당장 LG에너지솔루션과 소송 관련 합의를 진행해야할 상황인 탓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1·2공장을 향후 문제없이 가동하려면 서둘러 수입금지 조치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서 조만간 심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민사소송도 합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하는 불안요소로 꼽힌다.

ITC가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판단했다면 델라웨어 법원은 구체적인 손해배상 규모가 확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ITC에서 승소하면서 델라웨어 법원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한다면 더욱 배상금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 그 전에 합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는 재계가 양사의 합리적인 논의와 조속한 결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송 결과에 따라 글로벌 최고 수준의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과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사 모두에 대승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문제는 소송 충당금이 적립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SK이노베이션의 재무건전성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회사의 부채비율은 지난 2017년 말 77.3%에서 지난해 말 149%로 3년 만에 71.7%포인트 악화됐다. 같은 기간 5조5779억원 수준이던 차입금 규모는 13조6367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조단위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추가적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된다면 자금조달과 향후 투자에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이 타사와 달리 소송 충당금 반영 시기를 최대한 늦춰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재무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소송 관련 대규모 충당금 설정은 재무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소송 충당금 설정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었겠지만 이제 한계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 있는 SK그룹 서린동 사옥.[사진=석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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