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비핵화 수싸움, 심지를 굳게 해야

2021-0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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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믿음은 확고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제법 강단있는 답변을 했다. “김 위원장이 분명히 약속했다. 문 대통령한테는 더 확실하게 했다, 영변에 들어와서 봐라. 남측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도 좋다. 다 들어와서 확실하게 하자”는 말을 전했다. 질문을 한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안하지 않았냐”고 다그치자, 정 후보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북·미간의 협상이 결렬"된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거나, 비핵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한결같이 북한이 먼저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거의 무조건이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혹 비핵화에 대한 조건을 인정한다고 해도 비핵화가 이루어진 다음이다. 선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비핵화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선 일방적인 폐기가 아닌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그것도 동시병행하는 것인데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 합의(2018.6.12)한 북미 공동성명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먼저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북미관계(new relations)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한반도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북미가 공동노력(joint efforts)을 하는 것이다. 합의는 공동의 실천을 전제한다. 핵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변을 없애겠다는 북한의 의지에 미국의 노력은 무엇인가? 한 번 폐기하면 복구하기 어려운 영변 핵 프로그램 폐기에 대해 미국이 걸맞게 부응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용 후보자의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청문회 언급에 이런저런 반향이 나타나고 있다. 모두 미국의 심기를 드러내는 말이다.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문재인 대통령은 설득력 있는 증거 없이 트럼프 정부에 김정은이 비핵화에 진지하다고 주장”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조속한 북한 관여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같은 주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2021.2.5. VOA). 심지어 "바이든 정부는 그런 주장에 ‘회의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까지 훈수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네바 핵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L. Gallucci)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다고 설득하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로서는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하는 이야기다. 생각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인가?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힘과 무력을 가진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와 안보에 위협으로 간주한다. 일종의 전쟁행위로 본다는 이야기다. 모든 대북정책을 그 바탕 위에 두고 있다. 바이든 정부 또한 북한 핵 위협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에 관련이 되는 바, 동맹국가들과 긴밀한 조율을 통해 접근·해결하려 하고 있다. 사활적 이익은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이익이다.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자국의 영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사활적 이익의 핵심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가하는 전략까지 수립해 놓고 있다. 미국의 최첨단 전략무기들이 한반도를 수시로 선회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을 미리 탐지해서 선제 타격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핵무기는 물론, 최첨단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군사적으로 중요한 수백 군데의 목표에 일시 타격하는 것을 군사전략으로 세워 놓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도 문 대통령이나 정의용 후보자의 북한 비핵화 관련 발언에 대해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달리 보면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미국에도 민감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 핵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과 관련을 갖기에 더욱 신중한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심지를 굳게 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을 것으로 단정하고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미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의 대북정책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미국의 일각에서도 북핵 문제의 해결에 합리적 입장을 띤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로버트 갈루치 북핵 특사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 관여를 통해 북·미,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협상안을 만들어내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디.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마크 피츠패트릭((Mark Fitzpatrick)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도 "북한의 행동은 비핵화와 거리가 멀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 한국과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긍정적인 면"이라고 말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또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증거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북한은 반드시 비핵화 해야 하나, 그 목표를 얼마나 오래 걸려 어떻게 달성하는지는 협상의 몫”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한 추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흔들려서는 안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동시병행적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과 같은 우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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