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바람’은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투자업계의 큰손들 사이에서도 불고 있다. 수백조를 운용하는 이들의 투자 방식 변화는 국내 증시 등 금융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맏형'격인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ESG 행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스튜어드십이란 마치 집사(스튜어드, steward)처럼 고객이 맡긴 재산을 선량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해 성장, 투명한 경영 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국민연금은 실제로 이를 통해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려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자금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한국투자공사(KIC)도 ESG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KIC는 지난해 10월 ESG에 부합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벤치마크를 선정해 3억 달러 규모의 ESG 전략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최희남 KIC 사장은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통자산의 경우 각 기업의 ESG 등급을 감안해서 비중을 늘리고 줄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식과 채권 운용사를 선정할 때도 그 운용사가 ESG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감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 운용자산(AUM)이 30조를 넘는 교직원공제회와 15조원의 AUM을 운용하고 있는 행정공제회는 이미 지난 2019년에 글로벌 ESG평가사인 서스테널리틱스와 ESG투자를 적극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군인공제회의 경우, 올해부터 자금 출자시 ESG 요소를 고려한다고 밝혔다. 우선 환경(E)부터 접근하는 ESG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공단은 탈석탄 및 재생에너지 투자를 천명했다.
이처럼 투자업계의 빅 플레이어들이 앞다퉈 ESG 투자에 집중하면서 금융시장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주식 시장에선 이들의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ESG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업종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술과 담배, 도박 등 이른바 `죄악주’를 비롯해 환경문제와 관련해 비판을 받고 있는 석탄발전 등의 분야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반면 전기차와 2차 전지, 수소 산업 등을 비롯해 환경 관련 업종은 수혜가 기대된다.
메리츠증권의 강봉주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을 필두로 위탁투자에 ESG를 가미하게 되면 시장이나 기업들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들이 매기는 등급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앞으로 3-5년 정도 이런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ESG 이슈가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안타증권의 김후정 애널리스트는 “S나 G보다는 현재 E, 즉 환경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환경에 대한 투자자들이나 기업들의 관심도 크고 관련 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일종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