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등장한 것은 물론, 유가족과 팬들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한다. 인간들의 고유 영역이었던 문화에 AI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이세돌(38) 9단과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알파고의 5번의 바둑 대국이다. 두 번째 충격은 올해다. '맨발 샷'으로 유명한 박세리(44) 감독과 '골프 AI' 엘드릭의 대결이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가상 현실 속에서 고인을 부활시켜 유가족과 팬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 바둑판에 등장한 AI 알파고...이제는 "없으면 안 돼"
'이세돌은 이기지 못하겠지'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알파고는 첫 번째 대국부터 세 번째 대국까지 모두 불계승을 거두었다. 이세돌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네 번째 대국. 이세돌을 상대한 알파고는 돌을 던지는 것 대신에 오류 메시지를 띄웠다. 짜릿한 인간의 첫 승리였다.
당시 대국 후 기자회견에서 이세돌은 환한 미소를 보였다. 다른 대국에서 보였던 미소보다 더 크고 환했다. 마지막 5국은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돌아갔다. 5전 1승 4패. 한국기원은 알파고에 명예 9단증을 수여 했다. 재밌는 점은 사람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단증에는 '귀하는 평소 기도연마에 정진하고 기사로서 인격도야에 힘써 기품이 입신의 역에 이르렀으므로 9단을 면허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알파고는 인터넷 바둑에서도 활동했다. 한·중·일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60연승을 거두었다. 대륙 최강이라 불리던 커제(중국) 9단도 알파고에 무릎을 꿇었다. 3전 전패다.
알파고의 파죽지세에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다. 결국 AI와의 공존을 선택했다. 바둑의 역사는 알파고 전과 후로 나뉜다. 이후부터 AI와 함께 연습하고, 대국 승패를 AI를 통해 예측한다.
AI가 불러온 세상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대국이 활성화되자, 한 10대 여성 기사가 AI를 사용해 이벤트 대국에서 승리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이후 이 사실이 밝혀지며 한국기원의 징계를 받았다.
2013년 유러피언투어는 한 영상을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프로골퍼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AI 로봇이 대결을 펼쳤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거리별로 큰 세탁기와 작은 세탁기를 설치해 문을 열어두고, 그 안에 공을 넣는 대결을 펼쳤다.
매킬로이의 이 같은 이벤트는 그가 어릴 적 한 텔레비전 쇼에서 골프채를 쥐고, 세탁기에 공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은 큰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스윙했던 것은 맞지만, 대화하는 부분 등은 팩트가 아닌 픽션이었다.
조회 수 1240만을 기록한 이 영상이 등장한 지 3년 만에 '골프 AI' 엘드릭(Launch Directional Robot Intelligent Circuitry)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름은 전설적인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미국)의 이름 엘드릭(Eldrick)에서 'E'를 뺀 것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WM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 스코츠데일(파71·7261야드) 스타디움코스 16번홀(파3)은 콜로세움으로 불린다. 홀에 경기장처럼 관중석을 만들고, 갤러리들이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곳에 엘드릭이 홀인원을 기록했다. 칠 때마다 홀의 위치를 계산하고 성장해 정확한 스윙을 구사해 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이후 5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엘드릭이 한국에 방문했다. 지난달 30일 한 방송사는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을 방영했다.
엘드릭과 박세리(김상중)는 세 번의 대결을 펼쳤다. 드라이버·홀인원·퍼팅 대결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엘드릭은 드라이버를 쥐고 OB(Out of bounds)를 냈다. 바람이 세고, 산악지형인 한국 골프장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박세리는 260야드를 날렸다. 박세리 승리.
홀인원 대결로 이어졌다. 파3홀에서 엘드릭은 치면 칠수록 적응하더니 홀과 35cm 거리에 공을 안착시켰다. 1-1인 상황. 마지막은 퍼팅 대결이다. 3m 퍼트 대결에서 박세리는 세 번 모두 실패했지만, 엘드릭은 두 번 성공했다. 5m 대결도 펼쳤지만, 결국 엘드릭 승리로 돌아갔다.
대결 후 인터뷰에서 박세리는 "AI가 힘과 정교함은 앞서지만, 순간적인 대처가 부족해 보였다. 보완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유가족·팬들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다
2008년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한 그룹 거북이의 리더 고(故) 터틀맨(임성훈), 2014년 의료사고로 사망한 故 신해철, 1996년 세상을 떠난 故 김현식이 무대 위에 섰다.
AI를 통해서다. 유가족과 팬들은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한 방송사에서는 고인과 유가족을 만나게 해주었다. 프로그램 제목은 '너를 만났다'였다. 이는 AI와 가상현실(VR)로 구현됐다.
출연자들은 VR을 통해 고인과 만남에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눈물을 흘렸다. 누리꾼도, 시청자도 눈물을 보였다. 방영 후 특수영상팀과 자체기술로 디테일까지 살려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는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AI가 들어왔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인간이 AI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공존할 수 있는 선에서 공생(共生)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