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중국 벤처 투자시장 흐름을 바꿔놨다. 지난해 코로나19 충격에도 중국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은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전체 투자 건수는 줄었다. 투자자들이 좀 더 신중해지면서다. 이제 막 새로 시작한 초창기 스타트업보다는 성숙 단계로 접어든 업계 선두 스타트업에 투자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코로나19 유망산업으로 주목받는 바이오의료나 언택트(비대면) 서비스 업체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 불확실성 만연에 '안전빵' 투자···신규 스타트업 '찬밥 신세'
중국 시장 데이터 플랫폼 IT쥐쯔(IT桔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VC 투자액은 8145억1400만 위안(약 140조원)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벤처 투자가 원활히 이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중국 벤처투자 시장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충격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며 벤처 투자금도 ‘안전한 곳’에 쏠리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투자액은 늘었는데, 투자금을 받은 벤처기업 수는 줄어든 게 대표적이다. 전체 벤처투자액 절반 이상이 150여개 극소수 기업으로 몰리면서다. 대부분이 성숙기에 접어든 스타트업이었다. 반면, 초기(시드/엔젤/A시리즈)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은 전년보다 45%나 감소했다.
투자 받기가 힘들어지면서 신규 스타트업 숫자도 줄고 있다. 지난해 새로 설립된 신경제 방면 스타트업 숫자는 전년도 절반 수준인 3108곳에 불과했다. 이 중 투자금을 받은 기업은 고작 7%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 중국 지역 매니저 자오천은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잠재적 창업자들이 믿음을 갖고 부딪쳐보기보다는 안전한 일자리에 머무는 경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사모펀드 비전나이트캐피탈 데이비드 웨이 회장은 “불확실성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수익을 좇으면서도 (대마불사라는 믿음으로) 안전하게 1, 2위 선두기업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코로나19로 바이오·언택트 투자 '쏠림'···반도체 대약진도 두드러져
코로나19로 벤처캐피털 '먹성'도 바뀌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유망산업으로 떠오른 바이오 건강의료나 언택트 업체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온라인교육 산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한 인구 이동 제한으로 온라인 수업이 성행하면서 온라인교육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돈이 넘쳐났다. FT는 지난해 중국 온라인교육업에 유입된 벤처캐피털 자금의 3분의 1을 두 기업이 싹쓸이했다고 집계했다.
중국 온라인교육 스타트업 위안푸다오(猿輔導)가 그중 하나다. 지난해에만 모두 4차례에 걸쳐 35억 달러(약 4조원)어치 자금을 조달했다. 위안푸다오 기업가치는 170억 달러로 매겨져 중국 온라인 교육업계에서 가장 몸값 비싼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비상장기업)이 됐다. 텐센트, 힐하우스캐피털 등이 위안푸다오의 든든한 투자자다.
나머지 하나는 온라인교육업체 쭤예방(作業帮)이다. 지난해에만 두 차례 펀딩을 통해 23억50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알리바바, 세콰이어캐피탈, 소프트뱅크, 타이거펀드 등 거물급 투자자들이 대거 펀딩에 참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건강·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이 분야에도 자금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미국 테크기업 전문 상업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의료건강 방면에서 벤처투자 거래액은 12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에 대한 투자가 모두 2배 이상씩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항감염병 분야에 쏠린 벤처투자금은 전년보다 10배로 급증했다.
이밖에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면서 반도체 기업에도 벤처 투자금이 집중됐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수만개 넘는 기업이 반도체 투자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에 해산물기업부터 자동차 부품기업까지, 반도체와 무관한 기업 수만개가 반도체에 팔을 걷어붙였다. '반도체 대약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 사모투자 시장 전문 연구기관 칭커(淸科)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중국 벤처캐피털, 사모펀드의 반도체 투자건수는 모두 408건으로, 투자액은 856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2019년(384억 위안)과 비교해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 '기업사냥꾼' 텐센트, 이틀에 한번꼴 투자···수익률도 '好好'
코로나19 속에서 텐센트, 샤오미 등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졌다. 자체 구축한 생태계를 확장해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수익원을 늘리기 위함이다.
IT쥐쯔에 따르면 특히 텐센트가 113건으로 가장 많았다.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투자를 진행한 셈이다. '기업 사냥꾼'이라 불릴 만하다. 한때 텐센트만큼이나 투자에 열을 올렸던 알리바바는 약 30건으로,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충격 속에서 투자건수가 100건이 넘은 기업은 텐센트와 세콰이어캐피털차이나, 힐하우스캐피털뿐이었다. 중국 온라인매체 펑파이신문은 벤처캐피털, 사모투자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자금조달과 기업 물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달리 텐센트 투자는 활발히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텐센트 투자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SaaS(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에 전체 투자의 4분의 1이 집중됐다. 나머지는 게임(13.4%), 문화엔터테인먼트(10.71%), 전자상거래(9.82%), 금융(8.93%) 순이었다.
투자 수입도 짭짤했다. 텐센트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텐센트가 벌어들인 투자수입은 242억 위안으로, 2019년 한해 전체의 5배에 육박했다. 텐센트의 유능한 투자 수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