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법인 주식을 허위 신고한 혐의로 1심에서 계열사 9곳이 각각 벌금 1억원을 선고받은 롯데그룹이 항소심으로 다시 법정에 선다. 벌금만 물면 되는 약식명령에 이의를 제기, 정식재판까지 갔지만 패소한 탓에 항소심 결과에 따라 그룹사 신인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패소할 경우 전사력을 집중해 속도를 붙이려 했던 해외법인 투자강화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알에스를 비롯한 롯데그룹 계열사 9곳이 제기한 ‘롯데계열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항소심 선고가 오는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이들 계열사는 2014~2015년 16개 롯데그룹 관련 해외 법인 주식을 허위로 신고한 혐의를 받았다. 관련 계열사는 롯데지알에스를 비롯 △롯데건설 △롯데물산 △롯데알미늄 △롯데캐피탈 △롯데케미칼 △롯데푸드 △부산롯데호텔 △호텔롯데 등 9곳이다.
롯데 측은 1심에서 “검찰이 롯데그룹 관련 일부 계열회사 등이 동일인 관련주로 신고하지 않고 ‘기타로 신고했다’고 문제 삼았지만, 공정거래법 관련법상 동일인 관련주에 해외 계열사가 해당되는지에 대한 다툼이 있다”고 맞섰다.
반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신고해야 할 계열사가 국내 회사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해외 회사 주식과 관련해 동일인 관련주가 아닌 기타로 신고한 것은 허위신고”라고 판단했다.
‘허위신고의 고의가 없었다’는 롯데 측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실질적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임에도 외국회사가 배후에서 지배하는 형식을 갖춘 채 이를 정확히 신고하지 않을 경우 관련 계열사로 파악되지 않아 대기업 집단에게 적용되는 규제 등을 탈법적으로 면탈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고의성이 짙다고 봤다.
당시 검찰은 그룹 계열사를 관리하던 롯데쇼핑 정책본부에 대해서도 양벌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롯데쇼핑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측은 “롯데쇼핑 업무 담당자들이 단순히 자료를 취합했을 뿐 허위신고를 한 대리인이나 피고인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양벌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업계 안팎에선 시총 20조9530억원인 롯데그룹이 9억원의 벌금 때문에 장기간 법정다툼을 하는 것에 대해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벌금에 그친 약식명령을 굳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장기 소송까지 끌고 가면서 얻을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롯데 측은 그간 롯데그룹을 두고 대주주 경영권 다툼, 일본기업 프레임, 사드 경제제재로 인한 중국시장 철수 등 갖은 파고에 휩싸이면서 ‘해외법인 주식을 허위 신고해 법을 어긴 기업’이라는 오명까지 쓸 수는 없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롯데 측이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0조'는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공정위에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행위자 외 법인·개인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한다. 특히 대주주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공정거래법 68조는 지주회사의 설립 또는 전환과 지주회사 등 사업내용, 주식 소유현황 또는 채무보증현황 등을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 신고하면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소송전이 더 이상 그룹 리스크에 ‘대주주 일가의 전횡 등을 얹지 않겠다’는 롯데 측의 의중이 담긴 행보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1심 판결에 대해 법률팀과 각 계열사, 그룹 차원에서 다소 억울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인 항소로 대응하고 있다”며 “항소심 변론에서 '그룹 계열사들의 해외법인 주식 허위신고에 대한 고의성이 없었다'는 논리를 최대한 보강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재판이 진행 중이고, 패소할 경우 대법원 판단까지 맡겨야 하는 등 향후 절차가 길어질 수 있는 만큼 선고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롯데그룹은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글로벌 투자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중국과 베트남, 미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에 260여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