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아이가 잘 따라주면 좋겠지만 부모와 다른 인격체인 만큼 생각한 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오은영 박사는 지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SBS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아이가 보내는 SOS 신호를 알아차리고 부모가 잘못된 육아 방식을 취하지 않도록 구원자 역할을 했다. 오은영 박사와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훈육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의학박사인데 어쩌다가 육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죠?
A. 2003년도에 개인 병원을 개원하고 2005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시작하게 됐어요. 매일 가정을 방문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조언들을 하다 보니까 ‘국민 육아 멘토’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의사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있어요. 의학적·생물학적 관점으로 사람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각과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문제가 있을 때 부모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어떻게 치료하느냐를 보거든요. 전문의가 되고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 국민 육아 멘토로 불리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Q. 요즘 육아 프로그램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이게 육아에 어떤 효과로 작용할까요?
A. 방송은 언제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어요. 방송을 잘 만들어서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에게 순기능으로 다가가면 굉장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찾아오시는 분들을 1대1로 뵙고 작은 변화를 시작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 것도 너무나 가치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전문의를 만나러 올 수 없잖아요. 그리고 아이를 대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들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방송도 잘 만들면 굉장히 좋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요즘 육아 트렌드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A. 요즘은 자식을 많이 안 낳잖아요. 자식 수와 상관없이 자식은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한데 너무 잘 키우려다 보니까 부모들 마음은 많이 급하죠. 빨리 많이 가르치고 싶은 경향이 있는 것 같고요. 부모들이 예전보다 육아를 하면서 더 불안한 것 같아요. 걱정이 많고요. 예전보다 정보도 많고 필터링이 안 되잖아요. 정보를 많이 알면 좋은 면도 있지만 불안하고 걱정되는 면도 많거든요.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나”, “이게 맞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정보를 찾고 또 불안해지는 것들이 많아서 약간이라도 아이들을 편안하게 키웠으면 좋겠어요.
Q. 어린시절 오은영은 어떤 아이였나요?
A. 백일장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경험들 덕분에 어른이 돼서 책도 많이 썼고요. 의과대학 다닐 때는 바쁘다 보니까 글 쓰는 것들을 미뤄놨다가 2000년대 초부터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거든요. 시간되면 글 쓰고 녹음해놓고 기록을 해놨어요.
Q. 남편과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가정을 꾸리게 됐나요?
A. 같은 의과대학 동기예요. 남편은 정신과가 아닌 다른 과 의사인데 9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93년도에 결혼을 해서 거의 30년이 되어가고 있네요. 거의 대부분의 삶을 그와 함께 했고 친해요(웃음). 그리고 대학생 아들이 한 명 있고요. 친정아버지가 90세, 어머니가 86세인데 모시고 살고 있어요. 시아버지는 91세, 시어머니는 86세인데 같은 동 아래층에 살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죠.
Q. 아드님이 엄마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까요?
A. 우리 아들은 엄마를 참 좋아해요. 2020년 1월 1일에 보신각종이 울릴 때 남편이랑 아이랑 셋이 같이 있었는데 아들이 제 손을 잡더니 “엄마 아빠, 건강하셔야 돼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 나는 내가 제일 힘들 때 엄마를 생각하면 큰 나무 같아요. 기대기도 하고 엄마 생각하면 편안해진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제가 아들한테 ‘엄마도 네 생각하면 힘이 나고 고맙다’고 얘기했어요. 저랑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저랑 가깝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Q. 교육이란 뭘까요?
A. 교육의 궁극적인 이유는 좋은 대학을 보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간다워지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중요한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아이를 가르치는 걸 편협하게 보지 말고 넓게 봐야 해요.
Q. 언어교육은 언제부터 시켜야 될까요?
A. 태어날 때부터 모국어의 말과 소리, 부모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언어의 발달이 시작되는 거예요. 단어를 먼저 아는 게 아니라 소리 구별을 먼저 하는 거죠. 그래서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와 다양한 감정이 들어 있는 말을 들려줘야죠. 격분한 말을 들려주면 안돼요. 언어에 '언제부터'라는 건 없지만 생활 언어를 많이 들려주다 보면 24개월부터 100단어에서 150단어 정도 알아듣고 표현할 수 있게 되거든요. 36개월이 넘어서도 많이 늦으면 상의를 해보는 게 필요해요. 언어와 관련된 말소리를 들려주는 게 중요해요. 아이가 울면 우유나 젖을 바로 주는 게 아니라 “배가 고팠어?”라는 말소리를 많이 들려줘야 돼요.
Q. 훈육에도 언어가 있다는 게 새로웠어요.
A. 육아회화라고 하는데, 어떤 분야의 사람들이든 외국어를 배울 때 마음과 뇌를 비우고 편안하게 받아들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울 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깊고 따뜻하게 사랑하는 거 잘 알아요. 진심으로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알아요. 그건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서도 안돼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의 언어’를 못 배워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아이 말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돼요.
내가 이 아이한테 사랑도 표현하면서 훈계와 훈육도 해야 되는데 이때 내가 하는 말이 어떤지 나도 아는 게 중요해요. 처음에는 초급회화 하듯이 계속 하다 보면 몸에 익숙해져요. 의미와 그걸 전달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고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내 생활에 배도록 하는 거죠. 나중에는 본인이 편한 표현 방식으로 자꾸 해야 습관이 되고 매일매일 쌓여서 내 삶의 기준이 되고 개념이 되고 가치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하는 게 중요해요.
Q. 부모의 역할은 뭘까요?
A. 절대 애들을 때리면 안돼요.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꼭 부모 때문은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아이라도 부모가 있는 법이니까, 어떤 문제가 있든 상관 없이 부모는 이걸 알아차리고 잘 지도하는 게 필요해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고 부모가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아이를 잘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역할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Q.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A. 생명과 생존의 동아줄이죠. 우리 모두가 부모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죠. 우리 모두에겐 부모가 있죠. 부모와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있고, 부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징글징글해 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를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가족이란 건 사랑을 기본으로 시작한 관계이지만 굴레 같고 마음이 힘들 수 있거든요. 부모가 다 소중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한테 부모는 중요한 대상자예요. 관계가 좋든 나쁘든 중요한 대상자인데 이 중요한 대상자가 어찌 됐건 자녀가 최소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몸과 마음과 생각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걸 어느 정도 준비할 때까지는 자식을 키워야 돼요.
Q. 때로는 '우리 아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A. 부모는 아이에게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말과 행동과 감정으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요. 악을 쓰거나 떼쓰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말을 안 하기도 하고 쳐다보지도 않거나 대드는 아이도 있어요. 그리고 심지어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신호를 보내는 것이거든요. 이 신호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면 애들이 보내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 못해요. 아이들이 부모한테 보내는 말과 행동과 감정은 통역과 번역이 필요해요.
그게 잘 되는 사람은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잘 이해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에요. 이건 그냥 생기지 않아요. 걷는 것도 배우고 말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수도 배우고 이런 건 다 배우면서 정말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안 배워요. 너무 사랑하니까 깊고 따뜻한 사랑만으로 다 될 것 같은 거죠. 진심으로 잘 키우고 싶어 하는데 그걸로 다 되는 게 아니라 그걸 기본으로 아이들이 보내는 생각과 마음과 말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노력하고 배워야 돼요.
Q. 아이와 부모의 관계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자식이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던져요. 자식에 있어서는 “내가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안 해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랑이죠. 그러다 보니까 너무 사랑이 큰데 이 사랑 안에 갇혀 있으면 그걸로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모들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면서 키웠는데”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건 맞지만 이 아이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나와 달라요.
완벽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나침반 같은 건 있어요. 그건 그냥 생기지 않아요. 많이 알아차리고 배우고 노력해야 돼요. 부모는 아이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키워요. 근데 그 노력이라는 게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오랫동안 배우면서 나를 대했던 방식이에요. 변해야 결과가 달라지는데 조금이라도 안 바꾸면 늘 제자리예요. 제자리에 있다 보면 아이와의 관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Q. 그럼 어떻게 변해야 될까요?
A. 1도를 바꾸면 돼요. 출발선에 봤을 때는 거의 티가 안 나지만 1도라도 매일 틀다 보면 나중에는 다른 곳에 도달해 있어요. 어쩌면 아이의 생각과 마음, 가까운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도달할 거예요.
Q. 부모의 자격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부모는 부모일 뿐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부모인 내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를 잘 대해보자'라는 좋은 의미인 것 같아요. 그냥 부모는 부모로서 늘 그 당시에, 그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가끔 나쁜 사람도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좋지 않은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못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못난 부모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부모라고 해서 언제나 아이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고 대처하거나 잘 지도하는 건 아니니까 이런 건 매일매일 해보면서 실천하고 연습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라서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A.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고 가까운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 행복하다고 봐요. 마음 편안한 아이로 키우고 나랑 알고 있고 가까운 사람과 그럭저럭 지내는 게 행복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편안한 아이로 키우려면 “얘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다”보다는 “얘가 어떨 때 편안하고, 어떤 삶을 원할까”, "내가 어떤 부모로 존재할 때 편안해 하고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이가 편안하게 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Q. 서툰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부모 되는 걸 학교에서 안 가르치잖아요. 그래서 생후 12개월~만 3세까지 내가 나의 부모와 어떻게 애착을 형성하고 어떤 관계를 맺었냐가 3세 이후 인생에,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됐을 때 자녀 그리고 중요한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영향을 많이 줘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힘들 때, 배우자든 애인이든 가족과 힘들 때 나의 부모나 중요한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받았는지 한발 물러서서 나의 삶과 내면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그걸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해보고 성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부모로서 겪는 아이와의 상황들을 이전보다 조금은 타당하고 합당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길이 조금은 생길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아이의 미래, 가정의 미래,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아이들은 10분 전에 가르쳐줬던 걸 10분 후에 또 해요. 심지어 돌아서기 직전에 했던 걸 돌아서면 또 해요. 그러면 부모들은 처음에는 좋은 말로 했다가 세 번 말하게 되면 “몇 번을 말해”라고 하거든요. 그때 저는 "새날이 밝은 것입니다"라고 얘기해요. 어제도 오늘도 밥을 먹을 때 ‘왜 오늘도 밥을 먹어야 되지’라고 안하는 것처럼 언제나 새날이 밝았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이 상황에서 내가 또 좋게 말해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이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걱정을 하다보면 현재 행복을 잘 못 느끼고 지나가게 하는 것 같아요. 오늘 이 순간 아이와 가족과 눈을 맞추는 게 즐거웠다면 이 즐거움도 일종의 작은 행복이거든요. 이걸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