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기업의 방어권 보장과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절묘한 균형

2021-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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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성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정거래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한 기관의 장이 홀로 결정을 내리는 독임제 행정기관과 달리 공정위는 주요 정책이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중대한 사건 등에 대해 위원 9인이 합의를 거쳐 의결한다.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에 대한 심리는 기업을 조사한 공정위의 사건 담당자(심사관)와 해당 기업(피심인)이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사실관계 및 법률적용에 대해 상대방의 주장을 탄핵하며 공격·방어하는 대심구조(對審構造)를 취한다.

공정위 처분의 상대방인 피심인 기업은 적법절차 원칙에 따라 위원회의 심리절차에 출석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위 심사관이 기업의 위법행위를 주장하며 증거로 제출한 자료에 관해 해당 기업이 심사관과 대등한 지위에서 이를 확인하고 검토한 후 반박할 수 있는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증거자료가 다른 기업의 영업비밀인 경우에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영업비밀은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보호돼야 한다. 특히 공정위에 영업비밀을 제출한 기업이 피심인 기업과 경쟁자 또는 거래상대방이라면 해당 영업비밀을 비공개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결국, 피심인 기업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증거자료를 피심인 기업에 공개해야 하는 반면, 공정위의 조사에 협조해 자료를 제출한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피심인 기업의 방어권 보장과 자료제출자의 영업비밀 보호라는 상반된 요청을 조화롭게 달성하기 위해 공정위는 오랜 기간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증거자료의 확인을 요구하는 피심인 기업에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거나 비공개하는 결정 외에 제한적으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제한적 자료열람이란 비공개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영업비밀 자료에 대해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기업의 외부 변호사만이 공정위 청사 내 마련된 제한적 자료열람실에 입실해 열람하는 제도다.

제한적 자료열람실에서는 영업비밀 자료의 비밀성을 보장하기 위해 2인 이상의 공정위 소속 공무원이 상시 입회해 열람상황을 감독한다. 제한적 자료열람실에서는 휴대전화·노트북 등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며, 어떠한 자료도 제한적 자료열람실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 입실 전에 자료를 열람하는 변호사는 해당 영업비밀을 피심인 기업에 공개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며, 피심인 기업도 변호사에게 영업비밀을 요구하거나 제공 받지 않을 것을 동의한다.

제한적 자료열람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혹여 영업비밀이 유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공정위의 법 집행에 악영향을 미치고 공정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으므로 엄중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해당 변호사와 기업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도록 조치할 것이며, 대한변호사협회에도 해당 변호사의 징계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상시 협력의 기반을 마련했다.

앞으로도 공정위는 심의절차가 기업들과 일반 국민 모두로부터 더욱 신뢰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경청하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해 나가겠다. 제한적 자료열람제도를 통해 조사에 협조한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피심인 기업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심의과정의 절차적 적법성이 제고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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