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0/12/23/20201223160442156430.jpg)
[사진=연합뉴스]
바젤Ⅲ 조기 도입에 따라 대출관리 기준이 변경된 점도 은행들이 내년 가계대출을 조일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요소다. 금융기관 단위로 적용 중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내년 초 차주 단위로 전환되는 점도 큰 요인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에 속도를 내면서, 은행에서 돈을 양껏 빌리지 못한 차주들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풍선효과'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신규취급 대출 절반 이상 기업에 내줘야
주요 은행들은 올해 4분기부터 신규로 내보내는 대출액 가운데 절반 이상을 기업에 공급해야 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내년 2분기부터는 사실상 모든 은행들이 이 규제를 받는다. 대부분 은행이 바젤Ⅲ 도입을 완료하기 때문이다.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위원회가 권고한 신용리스크 산출방식인 바젤Ⅲ는 기업대출 위험가중치를 낮춘 점이 골자다. 은행으로선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자본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바젤위는 바젤Ⅲ를 2023년부터 적용할 것을 권고했으나, 금융감독원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기업대출을 늘리라는 의미로 조기 도입을 결정했다. 주요 은행들이 9월 도입을 완료했고 기업은행이 이달 말, 하나은행이 내년 3월 말 적용한다.
바젤Ⅲ 조기도입 조건으로 은행들은 2022년까지 기업대출을 늘려야 한다. 은행마다 연간 신규취급 대출액의 50~58%를 기업에 집행해야 한다. 예정(2023년)보다 빨리 도입함에 따라 대출여력이 확대된 만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라는 의미다.
문제는 기업 대출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규 취급 대출액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히려 가계대출을 줄여야 할 판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수요가 기업보다 가계가 많은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 리스크가 커져 기업여신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여신에 맞춰 가계대출을 취급해야 하는데, 결국 가계대출을 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금융당국이 내놓은 규제 이상으로 은행들이 신용대출 판매 중단 등 조치에 나선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1분기에는 DSR 규제 강화도 예정돼 있다. 금융기관 단위로 적용 중인 DSR을 차주 단위로 전환하는 점이 골자다.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인 DSR을 차주 개인별로 적용하면, 고신용자 대출한도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이러한 방안을 담은) '가계대출 관리 선진화 방안'을 내년 1분기 중 마련하겠다"며 대출억제 정책에 힘을 실었다.
차주 ‘옥석가리기’에 서민들 대출 문턱 높아질 듯
이처럼 내년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2금융권 풍선효과는 고·중신용 차주를 중심으로 이미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2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전보다 4조7000억원 증가했다. 카드사의 경우 카드론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으며, 보험사는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또 저축은행 대출을 중심으로 대출이 급증했다.
지난 10월 말 기준 전업 카드사 7곳(신한·국민·삼성·현대·하나·우리·롯데)이 신규 취급한 카드론 가운데 금리가 연 10% 미만인 비중은 17.46%로, 지난 6월보다 3% 포인트나 올랐다.
통상 10% 미만의 카드론 금리는 신용도 높은 고소득자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고소득자의 카드론 이용이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저축은행 역시 시중은행을 이용하던 중신용자들이 대거 유입된 탓에, 연 10%가 넘는 중금리 대출이 역대 최대치를 찍고 있다. 금융당국이 '빚투', '영끌'을 막기 위해 규제강화에 나섰지만, 자금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대출을 멈추지 않고 2금융권으로 넘어가면서 금리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진 셈이다.
신용도가 높은 고신용자들이 2금융으로 넘어오면서 저신용 서민들의 대출 문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차주 옥석 가리기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연체 우려가 큰 저신용자에겐 금리를 높이거나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2금융권 관계자는 “올 하반기 2금융권에 대출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2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규제강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대출 규제강화에 대비해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중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을 내주고 있어, 이 과정에서 저신용자들은 2금융권에서까지 밀려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