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을 넘어 ‘재벌왕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권의 재벌을 향한 우격다짐식 충성에 오히려 당황스럽다. 마치 재벌을 구두로나마 비판했던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씻으려는 듯 야당 뒤통수까지 치면서 이름만 남은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개혁이 화두로나마 살아 있던 것은 처음 한두 달 정도였다.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보였고, 언론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지명을 재벌개혁 의지의 진정성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전경련과 재벌들의 숨죽인 듯한 모습은 금세 대통령과의 면담 타진이라는 적극적인 소통 의사로 바뀌었다. 해가 바뀌면서 경제활성화로 국정의 화두가 바뀌면서 재벌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상조 위원장이 선언한 재벌의 '자발적 개혁'은 결국 재벌개혁은 애초부터 없을 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인 셈이었다.
소유와 경영(지배)이 불일치하는 모순을 1인 지배를 유지하면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경영권’이다. ‘경영권’은 2001년 현대자동차 사건과 2002년 조폐공사 파업 사건을 거치면서 대법원에 의해 그 ‘불가침성’이 선언되었다.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안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례 법리가 만들어졌다. 1975년 유신헌법을 “고도의 통치행위”로 합리화했던 논리가 기업경영에 동원되었다. '고도의'라는 형용사 한마디로 위헌행위가 정당화되었다. 마침내 대법원은 2003년 가스공사 사건에서 헌법 제23조 ①항의 재산권 보장, 제119조 ①항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존중,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근거로 경영권을 기본권으로 격상시켰다. 이후 노사갈등 상황에서 ‘경영권’은 헌법 제32조의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전가의 보도’처럼 유효하게 사용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권’은 총수가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권리’로 확대되었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일상화되었다. 2020년 정기국회에서 재벌들이 반대했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사익편취 규제적용 대상 기업의 확대는 대주주의 ‘전횡’과 ‘사익편취’를 제한하여 “소유한 만큼 이익을 가져간다”는 자본주의 기본원칙을 살려내려는 시도였지만 좌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포기는 사실 시간으로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포기보다 더 빠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경유착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보다 ‘한때 촛불정부’가 재벌들에 베풀고 있는 꼼수 섞인 입법은 재벌체제를 ‘넘사벽’으로 승격시키고 있다. 당초 여당이 약속했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나 상법상의 ‘3%룰’ 도입 등 재벌개혁 법안을 포기한 것은 제왕적 총수의 위상에 생길 뻔했던 흠집을 막아준 양념이라 할 것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공정경제 3법’의 위헌성을 입증하고자 대법원에 자문을 구함으로써 스스로 입법권을 포기하는 행태마저 보였다. ‘공정경제 3법’을 둘러싼 이 모든 소란이 마치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 위한 ‘성동격서’인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허용이나 차등의결권 도입 하나만으로도 ‘재벌공화국’은 이제 ‘재벌왕국’으로의 전환을 마무리할 수 있다. ‘3%룰’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내년 2월 LG전자 주총에 대비해 “LG전자 계열분리에 반대”하는 서한을 보냈다. 언론에는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차등의결권이 법제화된다면 재벌지배체제는 ‘요새’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모두 이 요새의 지킴이를 자처할 것이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한국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헤쳐나가 ‘사람 사는 경제’로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