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전락한 巨與 초선들…오만에 자정능력 상실

2020-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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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4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합동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4‧15 총선에서 180석 가까운 대승을 이끈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17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152석 승리를 거뒀지만, 108명의 초선 의원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18대 총선에서 자멸했던 이른바 ‘108번뇌’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21대 국회 개원 후 7개월, 첫 정기국회가 종료된 지금, 이 전 대표의 우려와 경고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민주당 전체 의석(174석)의 약 47%(81석)를 차지하는 초선 의원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당론을 착실히 따르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20대 국회 때만 해도 이른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로 불렸던 초선 소장파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민주당의 언로(言路)를 열었다. 이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지지층의 ‘공적’이 됐지만, 조 전 장관의 사퇴가 ‘잘된 일’이라는 평가는 60%를 웃돌았다. ‘잘못된 일’이라는 평가는 30%에 못 미쳤다(한국갤럽‧지난해 10월 15~17일 조사‧18일 발표).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특수부 검찰의 권한 강화를 우려하며 가장 거세게 비판했던 사람이 지금은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부동산 파동’과 ‘윤석열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 40% 선이 깨졌지만,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여전히 정부정책을 옹호하기에 바쁘다.

◆사라진 개혁성··· 각종 정치 현안에 ‘침묵’ 일관

지난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했던 5‧18역사왜곡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이다.

법안 발의 당시부터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었다. 국가가 역사적 사실을 정의하고 이를 부정할 경우 형사 처벌을 하는 내용에 진보진영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반자유주의적인 입법이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최초의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해당 법안에 100% 찬성했다.

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당론 법안은 아니었지만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한 법안이다.

당내 일부 인사들은 사석에서 출범도 안 한 공수처법을 개정하는 게 맞느냐는 우려도 내놨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피력한 의원은 없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해당 법안에도 100% 찬성했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엔 표결에 불참한 조응천 의원을 징계하란 글들이 쏟아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초선 의원들이 제 목소리 내지 못하는 현상을 구조적 문제 때문으로 진단했다. 그는 “초선 의원들뿐만 아니라 중진 의원들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문빠’라고 얘기하는 열혈 지지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아직도 민주당의 지지도가 대통령 지지도보다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현안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놓더라도 경제 현안에서도 초선의원들의 개혁적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때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처리했다. 공정경제 3법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에서 정부안보다 후퇴했다.

국회 정무위 논의 단계에서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전속고발권은 기업 간 담합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고발을 공정위가 독점하도록 규정한 것인데, 그간 공정위가 기업들에 독점적이고 자의적으로 면죄부를 행사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도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하는 것이 아닌 ‘개별 적용’하는 것으로 수정됐고,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소송자격을 대폭 강화(지분의 0.01%→0.5%)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경제 민주화를 내팽개치고 재벌 특혜를 선택했다”고 비판하는 상황에서도 초선 의원들은 침묵했다.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민주당 의원은 4선의 우상호, 3선의 남인순 의원이었고 초선 의원들은 전무했다. 6명의 초선 의원들이 ‘기권’을 택했을 뿐이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초선 의원 2명이 반대했고, 10명이 기권했다. 오히려 재선 이상 의원들의 반대‧기권이 많았다.
 

[그래픽=남보라 기자]


◆잇따른 실언에 ‘오만’까지··· 자정 능력 상실

초선 의원들이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업무 대신 ‘정권 홍보’라는 여당 의원의 직분에만 충실하다 보니 실언도 잦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게 나쁜 현상이 아니다”며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고 했다. 임대차 3법 통과 당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5분 발언에 호응이 커지자 이를 비판한 것인데, 많은 국민이 전세를 목돈 마련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이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의혹으로 야당과 거친 언쟁을 주고 받았던 지난 9월,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추 장관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빗대 논란이 일었다. 박 원내대변인은 “추 장관 아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여론이 들끓자 3시간 만에 이를 논평에서 삭제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해당 논란 당시 “국민의힘에 군대를 안 다녀오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미필자 비율은 민주당이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 추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독립운동 시끄럽다고 친일하자는 꼴”이라고 했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추 장관 사퇴 여론이 윤 총장 사퇴 여론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추 장관 사퇴 여론이 과반 가까이 되는데 ‘국민 절반을 친일에 빗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 박원순 전 서울시장‧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논란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의 비용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가 된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오 전 시장 피해자가 “내가 학습교재냐”며 반발할 정도였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공개적 비판은 삼간 채 쉬쉬하기에 바빴다.

때론 오만한 모습도 비쳐진다. 정의당에 따르면 김남국 의원은 지난 8일 낙태죄 공청회와 관련, 자신에 대한 비판적 논평을 내놓은 조혜민 대변인에게 전화해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 조치하지 않으면 낙태죄뿐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다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소위 ‘갑질’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해당 발언에 대한 해명 없이 “30대 어린 여성 대변인을 강조하는 게 불편하다”, “여성한테는 항의 전화 못하느냐”는 반박글을 올렸다.

신 교수는 “국민들은 초선 의원들에게 때가 덜 묻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지금 민주당 초선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정부여당 지지율이 45%만 유지되면 선거에서 이길 수가 있다. 지지층을 투표장에 나가게만 하면 이기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오를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지금과 같은 태도가 본인들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선 합리적 선택이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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