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올로 로시 [EPA=연합뉴스]
마른 체형, 뚜렷한 이목구비, 파마머리에 환한 미소. 자칫 부드러워 보일 수 있는 파올로 로시(이탈리아)는 골대 앞에서 공을 잡으면 거침이 없었다. 득점을 위해서는 내 몸은 하나도 아끼지 않았다.
축구계에 떠 있던 또 하나의 별이 졌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향년 60세)가 사망한 지 2주 만에 로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아직 부검 등은 진행되지 않아서, 정확한 사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시의 부인 페데리카 카펠레티에 따르면 로시는 난치병을 앓아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펠레티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로시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영원히(per sempre)'라고, 페이스북에는 '아주 특별한, 당신 같은 사람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파올로 로시(왼쪽)와 디에고 마라도나. [EPA=연합뉴스]
1956년 9월 이탈리아 프라토에서 태어난 로시는 2020년 12월 시에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축구선수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무릎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유벤투스와 코모에서 뛰었다. 이렇다 할 성적은 없었다.
세리에B(2부리그) 팀으로 임대됐다. 그러던 그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라네로시 비첸차(現 비첸차 칼초)에서다. 폭풍 득점으로 팀을 세리에A(1부리그)로 견인했다. 1부리그로 진출한 다음 시즌에도 24골을 넣었다. 2부리그 득점 선두에 이어 1부리그 득점 선수에 올랐다. 그야말로 놀라운 기록이었다. 당시 그는 비첸차에서 94경기에 출전해 60골을 넣었다.
상승세와 함께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첫 데뷔는 1977년 12월로 벨기에와의 경기였다. 국가 대표팀에서는 중앙 공격수와 오른쪽 윙어를 겸비했다.
그러나 프로팀에서 또다시 부상의 암운이 드리웠다. 주전 공격수가 명단에서 빠지자 비첸차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결국, 강등의 길을 걸었다. 하락세는 지속됐다. 페루자로 임대된 그는 승부 조작 스캔들에 연루됐다. 3년 자격 정지를 받았으나, 무고를 주장하며 2년으로 감경받았다. 다시 시작점 유벤투스로 돌아왔다.

질주하는 이탈리아의 파올로 로시(왼쪽)와 따라가는 브라질의 소크라테스(오른쪽) [액션이미지=연합뉴스]
1982년 월드컵은 로시(20번)에게 꿈 같은 무대였다. 이탈리아의 1라운드는 신통치 않았다. 폴란드, 카메룬, 페루와 한 조로 편성된 이탈리아는 3전 3무 조 2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C조에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한 조로 편성됐다. 강호들과의 만남.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가 있었고, 브라질에는 지코와 소크라테스(브라질)가 있었다. 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로시는 브라질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경기장의 노란 물결을 순식간에 잠재운 것. 경기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3-2 승리와 함께 4강전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의 상대는 폴란드, 서독의 상대는 프랑스였다. 폴란드와의 4강전에서 로시는 22분과 73분 두 골을 넣었다. 2-0.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결승 진출. 결승전 상대는 서독이었다.
결승전에서도 로시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57분 서독의 골망을 흔들었다. 두 팔을 들고 펄쩍펄쩍 뛰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탈리아는 기세를 이었다. 3-1 우승.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로시는 피파(FIFA) 월드컵 트로피에 입을 맞추었다. 이 사진은 다음날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쥐어졌다.

피파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 파올로 로시. [EPA=연합뉴스]
전 세계가 놀랐다. 44년 만에 조국에 안긴 우승이자,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이었다. 맹활약을 펼친 그는 골든 볼 어워드(최고 선수상)와 골든 부트(득점왕·6골)를 수상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그에게 '맨 오브 더 매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경기와 상관없이 잘한다는 뜻이다. 이후 유러피언 풋볼러 오브 더 이어와 월드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에 올랐다. 온제 도르와 발롱 도르(이상 1982년)도 수상했다.
유벤투스에서는 1985년까지 83경기 24골, 1986년까지 AC밀란에서 20경기 두 골, 1987년 엘라스 베로나FC에서는 20경기 4골을 넣으며 은퇴했다. 세리에A 우승은 2회,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UEFA 슈퍼컵 등에서는 1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A매치는 1977년부터 1986년까지 48경기 20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