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여정, 6개월만에 대남 비난 행보…강경화 발언에 왜 발끈했나 (종합)

2020-12-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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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코로나19 방역' 성과 무시에 '발끈'

원색적 비난·폭언 無, 北노동신문 보도도 없어

제8차 당대회·美 정권교체 고려 나름 수위조절

단, 정부 '코로나 방역협력' 구상에 악재될 수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지난 6월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6개월 만에 대남(對南) 비난 목소리를 다시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김 제1부부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날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고별 방한’ 공개일정 첫날과 맞물렸다.
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제1부부장은 전날 ‘남조선외교부 장관 강경화의 망언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라는 제하의 담화를 통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향해 날을 세웠다.

김 제1부부장은 “며칠 전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이어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 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랭기(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라며 경고장을 날렸다.

강 장관은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UAE)를 순방 중이던 지난 5일(현지시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 제1세션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석해 “북한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코로나19 통제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 이상한 상황(odd situation)”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보건 협력 제의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있다(unresponsive)”면서 “공중 보건을 위한 각종 협의에 북한을 초대할 용의가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을 언급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 제1세션 ‘코로나 팬데믹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 ‘K-방역’ 홍보대사 강경화, 北 김여정 심기 건드려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 6월 17일 이후 6개월 만이다. 당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축사에 대해 “철면피한 감언리설(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고 비난한 바 있다.

다만 이날 담화에는 과거에 등장했던 원색적인 비난이나 폭언 등은 없었다. 또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실리지 않아 대남 비난 수위를 상당히 조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김 제1부부장이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해 향후 남북 관계를 다시 위기에 빠뜨릴 도발 행보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의 8일 자 짧은 담화는 앞으로의 남북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강 장관의 발언이 다소 신중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강 장관의 발언은 진의가 어떻든 ‘코로나19 확진자 제로’라는 북한 최고지도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대 성과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북한의 추가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장관의 ‘북한 코로나19 상황 의문’ 발언을 문재인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국제무대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성과를 공개적으로 부인한 것으로 판단, 북한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강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원년 멤버 중 유일하게 남은 인사로, 문재인 정부 임기 5년을 함께할 거란 의미에서 이른바 ‘오(5)경화’, ‘K(강 장관 성 이니셜)5’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외교부는 강 장관을 적격한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과 관련된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김 제1부부장이 지적한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북한이 국제방역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설명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회담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 美 비건 방한에 맞춘 北 김여정 담화···속내는?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대북 코로나19 방역 지원 구상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임 교수는 “(이번 담화로) 백신 지원에 대한 북한 측의 수용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것으로 평가된다”며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 내부 상황을 공개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발언을 할 때는 정말 앞뒤를 계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최근 북한은 자국 해외공관에 대미(對美) 자극 자제령을 내리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면서 “남한 당국자를 포함한 외부평가 하나하나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남측에 대해서도 신년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에는 대미 메시지는 없었다. 하지만 담화 발표 시점이 비건 부장관의 방한 일정과 맞아떨어져 눈길을 끈다.

전날 오후 4시 15분경 전용기로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 한·미 외교차관회담을 시작으로 오는 11일 저녁까지 ‘고별 방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특히 이날은 최 차관과 회담 이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면담도 예정된 ‘한·미 외교당국의 날’이다. 강 장관과는 오는 11일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진행되는 만찬장에서 대면할 예정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이 강 장관의 지난 5일 발언을 8일 담화로 경고한 것을 두고 “담화 발표 여부에 대한 내부 논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비건 방한에 맞춘 것은 대북문제에 대한 한미 양측이 언행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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