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위해 정부가 8000억원을 투입하는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국내 항공산업 위기 극복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진그룹과 이번 통합을 추진하게 됐다"며 "국내 항공산업 재편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밝혔다.
◆증자 5000억+교환사채 3000억··· 대한항공 2조5000억 유상증자
이번 인수·합병안은 '산은→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구조로 진행된다. 산은이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5000억원을 투입하고,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한진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2조5000억원 규모로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주(1조5000억원) 및 영구채(3000억원)로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이번 거래로 아시아나는 총 1조8000억원, 대한항공은 7700억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경영평가위원회 설치해 한진칼 감시··· 경영진 교체·해임 가능
최종적으로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는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으로 완성된다. 산은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출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안정적인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해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경영평가위원회를 설치해 '땅콩항공', '물컵갑질'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특혜를 제공한다는 논란을 차단할 계획이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경영성과 미흡 시 경영진이 퇴진하기로 하는 등 책임을 부여하기로 했다"며 "경영성과를 매년 평가해 성과가 미흡할 시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해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진칼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주사요건은 20% 지분요건에 미달하게 되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시에는 지분율이 더 하락하게 되는 점도 감안됐다.
아울러 산은은 양사의 자회사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저비용항공사(LCC) 3사도 단계적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최 부행장은 "3사가 통합하면 중복노선 조절, 스케줄 다양화 등 운영 효율성을 도모할 것"이라며 "지방 공항발 국제 노선, 심야 시간대 스케줄 개발 등 지방 공항 활성화도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한진칼 지분 희석 불가피··· KCGI 가처분신청 가능성↑
다만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현아·KCGI·반도그룹 3자연합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자금이 투입되는 방안에 반발하고 있다. 산은이 이번 딜로 한진칼 증자에 참여하면 현재 41.4%의 지분을 가진 조원태 회장 측과 KCGI 등 3자연합 측 지분(46.71%, 신주인수권부사채(BW) 포함)은 희석된다. 특히 산은이 보유하게 될 신주는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로,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 회장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커진 셈이다.
KCGI는 "자금을 대한항공에 지원해야 한다"며 "부채비율 108%에 불과한 정상기업인 한진칼에 증자한다는 것은 명백히 조원태와 기존 경영진에 대한 우호지분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KCGI는 "한진칼에 유상증자를 강행해야 한다면 우리 주주연합이 책임경영의 차원에서 우선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KCGI가 가처분신청으로 딜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크다. 최 부행장은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통합작업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주요 주주인 3자연합과도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